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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0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7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8월 7일 연중 제 19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2-33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말하였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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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만약 집에 불이 나서, 부모님, 배우자, 자녀가 집안에 있다. 지금 들어가서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는가?"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을 골랐고,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 질문을 가치관 조사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가? 하는 문제로 말입니다. 


그러나 한 친구가 대답합니다. 


"진짜 불이 났다면 발에 걸리는대로 구해야하지 않습니까?"



모든 이들이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을 놓고 생각하고 고민할 때 이 친구의 대답은 모든 생각을 정지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 실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이 대답이 맞는 건지, 아니면 대다수의 생각대로 그냥 한 사람의 가치관을 물었던 건지 확실치 않지만 이 사건이 진짜라면 우리는 누구라도 먼저 구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을 대하는 우리는 언제부턴가 익숙해져있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찬사에 바쁩니다. 주님의 능력은 자연도 복종하는 분이시기에 발 밑에 있는 물이 예수님의 권능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식입니다. 물 위를 걷는 기적은 충분히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런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도 불가능은 없다고 말해 줄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했다면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주님이 걸으신 이 물은 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던 중이었습니다. 그 물 위에 조그만 배 위에 당신의 제자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위험에 쳐해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재촉하는 터에 주님 없이 강을 건너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버티다 모두가 죽음 앞에 공포를 느끼는 중이었습니다. 그 앞에 무엇이 나타나건 죽음 앞에 만나는 공포였을 것이고, 그것이 사람이었다면 그것은 분명 유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기적의 주인공은 제자들 앞에서 유령으로 나타납니다. 그분의 물 위를 걸으신 모습에 우리는 집중하지만 그 밤에 그분의 발과 그분 발 밑에 깔려 있을 물이 보였을리 없습니다. 그 밤에 아예 보이는 것조차 드문 시간 물 한가운데서 만난 유령이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알려준 한 말씀이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의 놀라운 기적의 목격에서 위험천만한 현실에서 보게 되는 유일한 희망으로 이야기가 돌아서게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물 위를 걸으신 이유를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현실적인 이유들로 예수님을 따라온 이들을 물리치려 했던 제자들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승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재촉하시어 당신에게서, 그리고 그 숱한 사람에게서 떨어뜨려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물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스승도 없이 말입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어부였으니 그 뱃길이 어색하거나 위험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칠흙같은 어둠 속 불어오는 바람은 그들의 익숙함을 무너뜨리고 죽음 앞에 선 힘 없는 이들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떠나보내려 했던 일을 그들 스스로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새벽에 물 위를 걸으신 기적보다 놀라운 능력으로 주님은 제자들의 처지를 아시고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그런 상황을 두고 물과 예수님의 발이 이루어내는 놀라운 장면을 상상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 사건을 만화에나 나오는 영웅의 개인기에 몰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시각일 듯 합니다. 


그 순간 그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 말이 있습니다. 



"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의 능력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이 한 말씀으로 제자들 곁으로 돌아오십니다. 


이야기 속에서 물위를 주님처럼 걷게 된 베드로의 나약한 믿음이 주님의 기적에 대한 확신이었겠습니까? 정말 주님이 맞으신지에 대한 의심이었고, 자신의 다시 물에 빠질 상황에 그는 주님께 구해달라고 외칩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 제자들을 구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누군가 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절실했거나, 혹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함께 있어주는 것 뿐이었던 적이 있으십니까? 주님이 건네신 "나다"라는 말은 설명할수도 없는 그 절실함의 사랑이 담긴 단어입니다. 


오늘 제자들을 살리려 물을 건너신 주님은 당신을 따라 외진 곳까지 따라나선 그 숱한 이들을 당신 스스로 먹이려고 하셨던 바로 그 착한 스승이셨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알려주시는 주님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주님과의 거리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 듯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는 했지만 주님과 함께 사랑하지 못했기에 그들이 한 그대로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주님은 사랑하셨고 그들의 위험에 그분 스스로 다가가셔서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불 길에 뛰어든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차도로 뛰어드는 사람, 그들에게서 이론이나 능력을 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무모하기만 한 마음에 모든 이들이 느끼는 그 마음으로 주님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로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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