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 하시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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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8-08 | 조회수562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하느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까?
이 부분은 저도 묵상을 하고 그 뜻을 알아 들으려고 많이 애썼던 부분이라서 부족하지만 같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을까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응답 했을까?를 잘 묻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으시는 좋은 방법은 질문을 많이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이야기 하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기도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루를 어떻게 살았나를 주님께 보고하고, 잘한 것은 칭찬 받고,잘못한 것은 어떻게 잘 살 것인지 교육받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아십니다. 그런데 굳이 우리의 입으로 왜 들으려 하실까요? "친밀감"또는 "정"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간을 살게 하는 원동력인데 그 힘이 주님에서 나오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서 답답하고 억울할 때
우리가 살 수 있는 힘은 "하느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입니다.
서로 친해지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술도 먹고, 많은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친구지 내가 그 사람 이름과 얼굴만 안다고 친한 것은 아니듯이 주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무엇을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시며 나는 누구이고,당신이 무엇을 원하시며 무엇을 주시려고 어떤 방법으로 일하고 계신가를 알려 주는 책인 것입니다. 이것을 간과하면 단순히 이야기 책으로만 만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바벨탑 사건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하느님 없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만용을 부리는 사건입니다. 길이 아닌 길을 가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것이 아니라고 모두 흩어 버리시며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눔이 무척 길어지겠습니다. 먼저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과 멀어져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아야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인간을 만드셔서 에덴동산에서 함께 살던 중에 인간이 뱀의 휴혹에 걸려 넘어져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인간에게 죄가 불어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 형이 친 동생을 죽이는 사건으로 시작해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실 만큼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차고, 홍수로 싹쓸어 버리시지만 인간의 죄는 더욱 커져 이제 하느님이 필요없다고 말하는사건의 상징인 바벨탑을 허물어 버리시며 참 삶의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같으면 그정도면 포기합니다. "인간되기 글렀어!"
그런데 주님은 무슨 유익이 된다고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십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편8,5-6)
그리고 아브라함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자손이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테라는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뒤에 이사악의 장인인 라반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창세31,19.31참조)인데 라반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호르의 손자입니다.
테라와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 (창세11,31참조)나호르는 그곳에 남았습니다.
더 자세히 성경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노아와 하란에서 몇십 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연대기적으로 가능하지 않더라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평화 방송에서 성서백주간 강의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하느님의 제단(창세8,20참조)을 쌓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노아와 이방신을 섬기는 아버지 테라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많은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노아의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아버지가 모시고 있는 사람이 만든 저것이 진짜 신인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하는 그 자리에서 신앙은 시작되는 것이고, 그 사람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구원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응답하고 어떤 이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품었던 첫 마음을 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도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죽음에 동조했던 바오로는 스테파노의 죽음 앞에서 또는 자신들의 귀한 목숨 앞에서도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들의 믿음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예수 그가 누구인데 사람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죽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따를까?" 이러한 의문이 신앙의 첫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의미가 본질적으로 무엇을 떠남인지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너희가 믿는 그 헛것으로부터 떠나라 그리고,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하십니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가르쳐 주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십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듯이 하느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여정임을 아브라함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 정도면 다 되지 않았나 싶으셔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부르십니다."(창세22,1)
그런데 왜 하필 그렇게 소중하고 사랑하는 외아들을 그냥도 아니고 그를 태워서 바치라고 하십니까?
여기에 하느님의 깊은 뜻이 있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기에 앞선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번제물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현의 최상급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 자주 요청하셨던 것이 있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려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가시고, 많은 민족....너희 앞에서 몰아내실 때...너희는 그들을 반드시 전멸 시켜야 한다. 너희는 그들과 계약을 맺어서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된다."
(신명7,1-9참조)
여기에서의 "전멸 시켜라"는 "번제물로 바침"과 의미가 같습니다. 이 메세지는 그만큼 완전한 사랑을 드림이고, 그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올가미가 되어 당신의 자녀가 걸려 넘어질 것임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명 처방(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에 태워 완전히 없애는 번제물로 바치는 의미라고 봅니다.
아브라함이 주님의 그 명령을 받고 무엇을 했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을 뼈아프게 되돌아 보았을 것이고, 그렇게 살아 온 인생안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 얼마나 알려고 애썼겠습니까?
"도대체 하느님은 어떤 분이기에 이런 명령을 하시는가? 자식을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는 번제물로 바치라고? 도대체 하느님이 원하는 것은 뭐야? 하느님은 어떤 분이야?......!"
이 물음들을 통해 아브라함은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아니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밤을 하얗게 지세우며 아마 야곱이 야뽁강나루에서 하느님과 씨름(창세32,23-33참조)하였듯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참 하느님을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참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올라갑니다. 하느님에 대한 참 믿음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은 우리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벗이여! 그대는 아브라함이 밤을 하얗게 지새며 그렇게 하느님을 알고자 한 만큼 노력 했는가? 했다면 아브라함이 만난 그 하느님을 그대는 만났는가?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을 오르듯이 그대는 모리야 산을 올라갔는가?
이것을 고백하기를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에 함께하여 그가 누리던 것을 우리도 누리며 행복하게 삽시다 이것이 주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아멘.알렐루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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