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으려면 확실히 죽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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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11-08-11 | 조회수48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죽으려면 확실히 죽어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 24)
교회의 두 단체가 친교를 다지자는 취지에서 일박이일 일정을 함께 하였는데, 프로그램 중 MBTI 성격 유형 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인원 중에 나는 유일하게 ENFJ형으로 나왔다. 강사가 한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탁월한 중재자'일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친정어머님이나 시어머님 모두 아버님들과 다툼이 있을 때는 우리 집으로 오셔서 하소연을 하고 가시는 것을 보면 약간 수긍도 갔다. 장녀도 아니고 맏며느리도 아니고, 시댁이나 친정 모두 다섯 중 셋째였기 때문에 나를 꼭 찾을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적인 일이라 잘 모를 텐데도 아무튼 그 설명을 듣는 모두는 나를 보며 끄덕끄덕 동의했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고 있자니 다른 단체의 몇 명이 나를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면서 팔을 잡더니 어두운 골방으로 데리고 가 조용히 속삭였다. 자기 팀의 웃어른 둘이 서로 불편하게 지내고 있어서 그 때문에 일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을 해결해줄 중재자로 나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고충을 듣고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은 했지만 한편으론 내게 정말 중재력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그날 저녁 미리 약속했던 대로 술이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며 모두 식탁에 모였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비켜주고 두 사람과 나만 남았다. 슬며시 공동체 운영상의 어려움에 대해 실마리를 던졌다. 주거니 받거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임 단체장과 후임 단체장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전임 단체장은 하나에서 열까지 지금 단체장에게 가르쳐 주었던 사람이다. 그때는 둘의 협조 관계가 아주 돈독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고, 더구나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성의 있게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타의반 자의반으로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었는데 그때 가장 믿을만한 후임을 추천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둘의 사이가 껄끄러워진 것이다. 명목만 단체장이라고 할 뿐, 사사건건 전임자가 참견을 하거나 수정을 하는 바람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간부들의 불만이 표출되고 공동체도 분열을 감지하며 모두가 힘들게 된 것이다.
문득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그대로 있으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 한다. 열매를 맺기는커녕 바람에 날아가거나 빗물에 씻기거나 새가 먹거나 아무튼 그냥 유실되는 것이다. 열매를 맺는 씨앗이 되려면 땅 속에 보이지 않게 들어가 흙으로 덮여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공동체의 화합과 발전이라는 열매를 위해 내가 죽어야 한다면 어떻게 죽어야 할까? 그저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 죽는 일인가? 아니다. 죽으려면 확실히 죽어야한다. 땅 속 깊이 자신을 감추어야 씨앗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그 단체에서 가장 일을 많이 알고 경험도 많은 사람으로서, 하는 일마다 도와주고 싶은 것을 꾹 참는 것이 바로 땅 속 깊이 내려가는 것이다. 새로 맡은 사람이 못마땅하다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목구멍 안으로 말을 꾹 삼키는 것도 죽는 것이다. 그런 것이 열매를 맺는 밀알의 죽음이다. 땅에 묻혀있는 척만 하고 '나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묻혀있다는 것만은 알아다오!' 하고 때때로 외친다면 보기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참으로 죽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그처럼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보기 싫게 죽어가는 밀알들이 많다. 보면서 들으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 공동체를 그만 떠나야 한다. 내가 없으면 공동체가 쓰러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교회는 성령이 돌봐주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안에는 그곳이 아니어도 봉사할 곳이 참 많이 있다. 어쩌면 성령께서 다른 곳으로 불러주시기 위해 그런 시련을 주시는지도 모른다. 인간적으로 섭섭한 마음만 갖고 있으면 성령의 부르심을 올바로 들을 수 없다. 후임자도 자기 뜻만 고집하지 말고 경험자의 의견을 묻고 협조를 구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전임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좀 더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곧 자신도 그의 뒤를 따를 것이라 생각하면서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려깊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 역시 공동체의 화합이라는 열매를 위한 밀알의 죽음이 아닌가. 전임자를 든든한 후원자로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열매이다. 늦은 밤까지 밀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음 날의 일정도 마치고 돌아왔다. 얼마 후, 그 단체의 후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과연 탁월한 중재자이십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전임자가 자기에게 모든 권한을 양도하고 공동체에서 아예 손을 떼었다고 하였다. 그날 그분이 그렇게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하며 고마워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두 사람은 진짜 멋진 신앙인이기 때문에 뒷마무리도 좋게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랑과 열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보다 때론 안으로 깊이 삭히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현재 그들 모두 다른 곳에서 더 큰 일들을 책임지고 있다. 성령께서 그쪽으로 불러주시기 위해 잠시 아픔을 주었나보다. 나 역시 자신에게 때때로 이르고 있다.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일한다면 알아주지 않아도 좋고, 잊혀지고 묻혀져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밀알 하나의 죽음이다. 아낌없이 봉사하자. 그리고 홀가분하게 떠나자. 언제나 더 큰 선물을 마련해놓고 기다리시는 그분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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