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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1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6 조회수29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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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가끔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교리를 통해서 가보지 않는 하늘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게의 경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빗대어 더 좋고 더 행복한 세상으로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럴 때 마다 '과연 그럴까?'하는 생각이 스치곤 합니다. 하늘 나라는 아무리 들어보아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 참 많이 다른데도 우리는 늘 우리의 생활에서 좋은 것으로 하늘 나라를 설명하곤 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표현되는 하늘 나라는 우리의 상식과 전혀 다른 차원인데 말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하늘 나라의 비유는 우리와 전혀 다른 하느님의 셈 법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신 터져 나오는 불만과 불편함을 숨길 길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이들을 모아오기 바쁜 밭의 주인은 마지막 셈을 할 때 모든 일꾼들을 품삯을 일정하게 지급합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일한 일꾼들도, 그리고 해질 무렵 와서 잠시 일한 일꾼들도 받는 몫은 같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알겠지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셈법입니다. 주는 삯이 같다고 해서 공평하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 일한 내용과 양은 다른데 삯이 같다는 것은 주인 마음이라는 억지스런 기준 외에 어떤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이것이 하늘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지금껏 우리가 들어온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놓고 좋아하는 목자의 기쁨도 하루 종일 순종하며 살아온 양들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됩니다. 하늘 나라의 좋은 몫을 발견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처분하는 일 조차도 그 끝을 모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이기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런 엉터리 계산식을 두고 태연히 말씀하십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정말 하느님 나라의 질서는 우리의 것과 너무 많이 다른 듯 합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조차 누가 더 높은가를 궁금해하고, 그 나라에서 우리가 차지할 몫을 놓고도 하느님께 성실함을 기준으로 서로를 나누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세상에서 조차 보이지 않는 순서를 매기고는 그 가치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가치로 설명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나라는 하늘나라이고 그 가치 이외에 다른 설명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주인이 하느님이신 이상 기준도 내용도 우리는 알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같이 하늘 나라, 혹은 하느님 나라라는 같은 말과 같은 내용의 목적지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에서처럼 우리는 한사코 이런 공동의 하늘 나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 자녀로 힘겹게 살아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야 하고, 어떤 사람은 삶의 가장 마지막에 겨우 신앙을 깨닫고 죽어 하늘나라에 똑같이 들어간다면 그건 아주 오랜 신앙생활의 사람에겐 허탈한 일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하늘 나라를 이야기하고, 같은 구원을 말하며, 같은 영원한 생명이라 하면서도 지금 이 땅에서는 신앙생활의 정도에 따라, 내용에 따라, 직분에 따라 자신들을 알아서 나누고 세상의 가치로 천국의 순서를 설명하듯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어지는 말씀은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입장 정리로 비춰집니다.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주님은 이렇듯 말씀하시지만, 이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이 후한 처사에 시기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마음의 공정을 설명하지만 보상으로 주어질 몫의 내용과 상관 없이 사람들을 불만입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의 모습에 실망을 함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가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주인에 대한 시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같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서 있는 곳, 하늘 나라의 질서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살게 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상상하며 양 한마리라도 더 구하고 싶은 주인의 마음과 상관 없이 양들이 서로의 수고와 열심을 기준으로 서로 미워하고 적반하장으로 하느님께 차별대우를 강요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이들이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닮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영원히 미워하며 살아간다는 그 불행을 우리가 꿈꾸어야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질서로 하늘 나라를 설명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미 하늘 나라에 서 있는 사람처럼 하늘 나라의 이름으로 권세를 누리거나 줄을 서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하느님 앞에서 분명 그 생각들이 그들의 구원을 더 멀게 느끼게 하고, 불공평하다 느끼게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하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꼴찌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아주 긴 시간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이미 하늘 나라에 살고 있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늦게라도 들어온 이를 격려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그 삶의 시간 만큼 사랑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들었으면 합니다. 


삶의 마지막에라도 그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수조차 없는 처지에서라도 하느님을 깨닫고 삶의 마지막 머리를 하느님께 두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며 기쁜 일입니까? 우리는 이런 어이없는 하느님의 계산법을 머리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그냥 구원을 위한 고달픈 인생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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