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환영받지 못하는 봉사일지라도 나는 하리라.
작성자최종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7 조회수696 추천수8 반대(0) 신고

우리지역, 성당 가까운 곳에 환자 한분이 있었다.

봉성체 날이면 의례히 신부님과 함께 찾아갈 뿐 아니라

반기도도 그 환자를 위하여 그 집에서 여러 번 하였고

그 집과 환자를 위하여 9일기도도 여러 번 바쳤다.

 내가 지역장 맡은 이래 처음부터 방문한 집이었다.

항상 구역 식구들이 청소하고 환자를 위한 기도도 하며 신부님을 맞이하던 집이었다.

그러나 5년여 동안 그 집 자녀들은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적은 할머니였지만 그가 죽었다.

안성공원 묘원에 장사하였다.

점심식사 후 버스에 오르기 전 상주인 고인의 아들을 위로하며

이제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오라고 이야기하려고 불러서 마주하였다.

그런데 그때 그의 여동생이

상주인 자기 오빠를 부르며 하는 소리가

“오빠, 빨리 오세요. 장사도 다 치뤘는데 무슨 이야기 할게 남았다고 그러세요.

어서 오세요.” 한다.

상주는 말없이 동생을 따라간다. 동생인 그의 여동생도 다른 본당 신자란다.

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승용차에 올라탔다.

나는 교우들과 함께 쓸쓸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래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반환기도를 바쳤다.

그날 이후 나는 그들을 다시 한 번 보지 못하였다.

성당 주차장 정비사업 이후 마을 교우들을 위하여 주차권 발매가 있었다.

구역장이 추가로 주차권 주문을 할 때 그 이름이 올라 있었다.

 나는 말했다. “이 사람은 냉담을 풀기 전에는 주차권 보류합니다.“

 

어느 날 큰 수녀님이 8지역 할머니 한 분이 위중하시다며

임종기도를 바쳐 달라고 하신다.

양회장님과 함께 이틀을 방문하여 임종기도를 바쳐 드렸다.

할머니의 교적은 충남 합덕이고 아들 내외는 냉담한지 10년이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는 지역 식구들의 책임 하에 장례를 하지 않고

연령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던 때였다.

장례 날 새벽 4시 출관, 합덕 성당 8시 장례미사였다.

합덕에 다다르니 해가 뜨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장례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다.

며칠 후 자손들의 냉담을 풀기 위하여 양회장님과 함께 방문하였다.

아들 내외가 모두 있었다. 젊은 자매님이 말한다.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수고하신데 대하여는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당에 나가자고 하시려거든 다시는 찾아오지 마십시오.

그러신다고 교회에 나갈 우리들이 아니니까요.

수고비는 전날 연령회장님께 드렸지요?“

문전박대 당하고 우리는 돌아왔다. 연령회장님이 받은 돈은 10만원이었다.

나는 연령회장님께 돈은 왜 받았냐고 질책하였다.

 

이러한 냉대 속에서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하여야 할 이유가 있다.

이미 죽은 이의 영혼도 영혼이지만

이 일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감동을 받아

회개를 앞당길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가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상가에 참여한 다른 참여자들이 헌신적인 봉사자들과 단합된 교회의 모습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발견 할 수 있을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하리라. 어떠한 수모가 나를 기다려도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 까지 하리라.

어쩌면 저들 보다 더 추한 나의 과오가 있을 런지도 모른다.

저들의 냉대가 결코 무가치 하지는 않다.

그것은 나에게서 교만함을 꺾어 버리는 은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