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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판관 입타. 그의 딸이 번제물로 바쳐지다.순교인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9 조회수686 추천수5 반대(0) 신고
 
 
 
 
+샬롬 샬롬
 
 
이 글은 성경 묻고 답하기 5481번을 읽고 묵상한 내용입니다. 
 
위의 글을 읽고 많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잘 알아 듣고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저는 오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고 계신지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묵상해도 되는지 궁금해서 올립니다.
 
저가 배우기는 그 날의 독서와 화답송은 복음의 내용을 더욱 잘 알아 듣게 하기 위해서 선정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의 핵심 메세지부터 이해하고 알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임금이 자신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였지만 이러 저러한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습니다. 진노하신 임금은 아무나 데려 오라고 하셨고 종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다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새로운 구원사를 시작하신다. 곧 그리스도교 전도사들로 하여금 도시 성문들로 가서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악한 자들이건 선한 자들이건 모두'교회로 모아들이도록 명하신다.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 혼성 공동체요,종말에 이르기가지 악인과 선인이 공생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별의별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속에는 진짜 그리스도인도 많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도 많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마태13,36-43 가라지의 비유 해설 참조). 그러니 교회는 성속의 뒤범벅이다. 거룩하고도 죄 많은 교회다.
 
마태오복음에 따라 우의적 의미를 따진다면, 혼례복은 산상 설교의 가르침을 행함(7,24-27),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 의로움울 행함(3,15;5,20),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22,34-40), 자비를 행함(25,31-46)을 뜻한다. 그렇게 행하는 이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200주년신약성서 주해서 발췌)
 
종합 정리하면 하느님께서 구원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어떤 이는 초대에 응하지도 않았고,어떤 이는 초대에는 왔지만 초대한 이가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임금 앞에서 차려하야할 예의를 갖추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다는 내용이 아닌지요?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시며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하시는 내용이 아닙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판관 입타의 이야기를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고 있을 때 여호수아도 죽고,그의 세대 사람들도 모두 조상들 곁으로 갔다. 그 뒤로 주님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업적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나왔다."(판관2,10참조) 왜 "다음 세대"가 나와야 하는데 "다른 세대"가 나왔을까요?
아마도 너무 좋은 환경에 취해서 살다가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교육이란 하느님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인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판관21,25)
여기에서 임금이란 하느님을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느님만이 진정한 임금이시기에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판관기의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입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입타를 살펴 보겠습니다.
"길앗 사람 입타는 창녀의 아들이었는데 힘센 용사였다. 길앗이 이 입타를 낳았다. 길앗의 아내도 그에게 아들들을 낳아 주었는데 '너는 다른 여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 집안에서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없다.'하며 그를 쫓아내었다. 그래서 입타는 자기 형제들을 피하여 달아나 톱 땅에서 살았는데, 건달들이 입타에게 모여들어 그와 함께 노략질하러 다녔다.
얼마 뒤에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길앗의 원로들이 입타를 데려오려고 톱 땅으로 가서, 입타에게 말하였다. '와서 우리의 지휘관이 되어 주시오...(중략)...길앗에 사는 모든 주민의 우두머리가 되어 주시오.'"(판관11,1-9참조)
 
그리고 입타가 암몬 자손들의 임금에게 한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없소.그런데도 그대는 나를 공격하여 나에게 악한 행동을 하고 있소. 그러니 판관이신 주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들과 암몬 자손들 사이에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오. 그러나 암몬 자손들의 임금은 입타가 보낸 전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판관11,27-29참조)
여기가지 볼 때 이미 주님은 이스라엘을 살리시려 계획 하셨기 때문에 무조건 이기는 전쟁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입타의 서원은 하느님의 뜻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입타는 왜 그같은 서원을 했을까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입타는 굉장히 서러운 사람이고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가 힘센 용사였기에 이스라엘 원로들이 처음에는 그를 군대의 지휘관 정도로 대우해 주겠다고 하나 그가 거절하자 이번에는 길앗 주민의 우두머리로 대우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두머리"는 거의 임금님 대우가 이닐까 싶습니다. 이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입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전쟁은 이겨야 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자기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가장 기뻐해 줄 딸이 나올 것을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임금의 유혹"은 딸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만일 벤야민을 아버지께 데려오지 않으면, 제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창세42,37참조) 그런데 유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맡겠습니다. 그 아이에 대해서 저에게 책임을 물으십시오. 제가 만일 그 아이를 아버지께 도로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세우지 않는다면, 제가 아버지에 대한 죄를 평생 동안 짊어지겠습니다."(창세43,9참조)
 
유다의 이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유다지파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입타의 서원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고, 하느님은 그의 서원을 들어 주셔서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려고 계획하신 것이고, 입타의 서원과 관계없이 이루어 주신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더욱이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입타의 서원을 받으시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고 생각합니까?  
이미 하느님의 계획은 입타의 서원 이전에 암몬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기려고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서원 이전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습니다.(판관11,29참조) 주님의 영이 내렸기에 그는 개인적인 서원을 하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는 차질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이 필요하셔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받고서야 그 소원을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까?
우리들이 대단한 무엇을 드린다고 서원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까? 
 
만약 입타가 자신의 성공을 위한 서원이 아니었다면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 없단다."(판관11,35참조)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입타가 정말로 하느님의 의중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전쟁은 이길 것으로 확신 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그러한 서원도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입타는 하느님의 의중을 알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면 하느님께 무언가 대단한 서원을 해야 들어 주시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 점은 오늘의 우리들도 이런 기도를 아주 많이 드리고 있습니다. "저의 이 기도를 들어 주시면 무엇 무엇을 해 드리겠습니다."
 
입타는 자신이 그러한 서원을 드렸기에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미 전쟁에서 이겼으니 서원을 철회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요?
정말 임금 대우에 대한 욕망보다 딸을 더 사랑했다면 "아이고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차라리 제가 죽겠습니다. 저를 받으소서."라고 기도해야 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입타는 이스라엘 원로들이 제안한 길앗 주민들의 "우두머리"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입타의 딸을 묵상해 봅니다.
그녀는 아버지도 사랑했으며 또한 하느님도 사랑한 여인이라고 느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여성을 사람이라고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지 않았는데 판관시대야 오죽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가는 종교 지도자들인 남성들에게 입타의 딸이 주는 메세지는 아주 강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는 하느님을 임금으로 모시지 않고,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곧 자신이 하느님인양 살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러한 때에 이름도 알리지 않는 한 여인이 보여주는 사랑의 메세지를 알아 들으라는 말씀으로 묵상을 해 보았는데 여기는 묵상방도 아니고 좀 걱정입니다.
 
두 달 동안 입타의 딸은 하느님이 계신곳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자신의 몸을 두고 곡을 하였습니다.(판관11,37이하 참조)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여 이겼듯이 입타의 딸도 그동안 얼마나 하느님의 의중을 알아 들으려 애썼나를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번제물로 태워 죽어야 하는 죽음 앞에서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자신의 죽음을 앞에 놓고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했겠습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죽을 것이냐? 아니면 자기 자신의 목숨을 지킬 것이냐?
그녀는 사랑을 위해 아버지를 선택했다고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입타의 딸의 그 아름다운 사랑을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번제물로 태워 바친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해서 아버지가 주님께 서원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마음먹은 딸의 사랑을 받으신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은 그가 아무리 죽을 죄인이라도 사람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33,11)
 
이스라엘의 판관의 딸임에도 이름도 남기지 않고 번제물로 자신을 내어 놓는 이 여인의 사랑에 감동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죽겠다고 나선다지만 자식이 부모를 위해 죽겠다고 나서기가 쉽겠습니까?
이름도 알려주지 않으나 "하느님께 서원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인 딸의 믿음 덕분에 입타는 주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판관시대에(판관21,25참조) 이 딸의 이야기가 주는 메세지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성경은 왜 입타의 딸 이름을 밝히지 않는가?
입타의 딸과 같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가장 귀한 자신의 몸을 살라 바치는 사랑은 입타의 딸 한 사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묵상합니다.
"누구 누구의 딸"인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이름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ㅇㄶ았다고 여겨집니다.
 
"두 달"은 어쩌면 입타에게도 주어진 회개의 시간은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딸의 사랑 앞에서 치열하게 싸워서 사랑이 승리하라는 기회의 시간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입타는 싸우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딸을 희생시킵니다.
딸이 죽겠다고 해도 아니라고 자신이 죽겠다고 나섰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을 죄를 지으면 자신이 그 죄를 대신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런데 입타는 한마디 위로도 없이 "두 달 뒤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쳤다."(판관11,39) 라고 합니다.
 
성경은 입타처럼 살면 하느님의 마음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지 알라고 오늘 이 말씀을 전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해도 오지 않는 사람들과 오긴 했어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로 아프시듯이...
 
 종합하면 복음의 메세지와 입타를 통한 메세지는 통한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매일 미사에서 읽혀지는 성경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 듣고 잘 이해하려면 성경의 전체적인 핵심 메세지와 함께 그 텍스트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무엇을 전하려고 선택된 내용인지를 파악하고 묵상하심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전체적인 숲은 보지 못하고, 한 부분만 보시면 어렵고 이해 안되기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작은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여기까지 밖에 모르고, 또한 이 내용이 성경의 말씀을 다 알아 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고 소중하게 알아 들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에 대해서 바로 알아 들으라는 뜻으로 묵상을 마칩니다.
이상과 같이 묵상해도 되는지요?
감사합니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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