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8월 20일 토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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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8-20 | 조회수658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8월 20일 토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마태오 23,1-12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태양초 고춧가루>
요즘 저희는 빨간 고추 수확에 여념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흐뭇한 마음으로 기쁜 얼굴로 녀석들을 땄었는데, 요즘은 돌아서면 빨갛게 익어대는 녀석들 때문에 정말 괴롭습니다.
고추만 따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속히 건조시키기 위해 일일이 가위로 반을 자릅니다. 햇살이 좋을 때를 골라 마당에 ‘쫙’ 깝니다. 비라도 오면 즉시 걷어야지요. 오랜 손길과 정성 끝에 잘 건조된 녀석들만 골라 방앗간으로 들고 갑니다. 드디어 태양초 고춧가루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넓은 수도원 마당은 요즘 수도 없이 널어놓은 새빨간 고추들로 인해 벌써 가을의 정취가 완연합니다.
참으로 기특한 고추농사입니다. 올봄 저희가 밭에 심은 것은 분명 여리고 가냘픈 고추 모종이었는데, 어느새 키가 허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탐스런 결실이 계속됩니다.
반대로 토마토를 잔뜩 심은 하우스는 신경을 별로 쓰지 못한 관계로 건질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근처 다른 토마토 하우스에서는 매일 수많은 출하가 이루어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직접 사가기도 하는 등 분주한데, 저희는 완전 반대입니다. 잎은 무성합니다. 키도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나 열매의 질이 형편없습니다. 다른 집과 게임이 안 됩니다. 완전 꽝입니다. 조금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봤습니다. 여력이 없었던 관계로 순따주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솎아주지도 못했습니다. 불필요한 잎과 가지만 무성하다보니 영양분이 그리로 다 쏠렸습니다. 열매는 미성숙 단계에서 성장이 멈췄습니다. 크기도 작고, 볼품도 없는 토마토이기에 출하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그저 오며 가며 심심풀이 삼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모습은 정체된 신앙생활, 고착화된 신앙생활, 앞뒤가 꽉 막힌 신앙생활, 유아기적 상태에서, 초보단계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신앙생활, 그로 인해 성장이나 결실이 전혀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신앙생활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것에 지나치게 연연한 나머지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성을 상실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사실 당대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 안에서 차지하던 역할은 중차대했습니다. 종교법과 의식에 관한한 독자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형사소송 때 재판관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민사소송 때는 다른 재판관들과 함께 판결을 내리거나 단독재판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동족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신앙의 본질이나 고유한 정신, 영성을 잃어버렸으니, 그들을 믿고 따르며 의지하던 백성들의 고초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세월이 흐른다고, 세례 받은 연한이 길어진다고 그에 비례해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합니다. 쇄신을 위한 가지치기입니다. 솎아주기입니다. 철저한 자기 성찰 작업입니다. 부단한 자기 쇄신 작업입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헨리 모슬리는 인간이 흘리는 눈물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물.”
인간은 슬픔과 서러움으로 인해 눈물 흘립니다. 때로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해 눈물을 흘립니다. 때로 힘겨웠던 지난 세월 앞에 눈물 흘립니다. 그 숱한 죄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새 삶을 허락하신 하느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 흘립니다. 때로 너무 행복해서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아마도 눈물에 인색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눈물 흘리는 것은 약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감정들도 애써 억눌렀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느님을 향한 신앙도 점점 메말라갔을 것입니다. 마침내 눈물샘이 말라버린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늘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했습니다. 이웃들의 결함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 투자할 시간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입니다. 총체적인 평가입니다. 세밀한 자기진단입니다.
이런 노력이 계속되지 않을 때,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걷던 길로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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