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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2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1 조회수33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년 8월 21일 연중 제 21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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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나를 누구라고 생각할까?'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복음은 시작됩니다. 


우리 역시 사람들의 평가에 관심이 많은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냥 느끼는 대로의 반응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려 애를 쓰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면 "내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알리고 다니며 거기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 하는 것이 요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반응이 올 때까지 자신을 준비하고 더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던지는 '나를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내가 만든 답을 확인하는 작업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사람들이 느낌이나 지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있는지를 묻는 예수님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의 질문이 내가 원하는 나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면 예수님의 질문은 살아계시나 숨어계신 하느님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한 궁금함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사셨을 뿐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대답 속에 예수님은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따로 기억하고 이야기할 정도의 배경이나 자격이 없는 분이셨음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시 사람들은 요즘 유행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문화인으로서의 유명인으로 예수님을 전혀 몰랐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름 없는, 얼굴 없는 사람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소위 '짝퉁' 으로 불릴 정도의 사람으로 인정되십니다. 


그러나 복음의 주제처럼 다루어지는 베드로의 고백을 보기 전에 이 대답들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보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은 몰랐으나 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은 모두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모를 이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것을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빌어 표현했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함이  있었다면 그들은 하느님께서 한 사람을 뽑아 세우셔서 자신들에게 예언자로 보내주셨다는 생각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몰랐다는 아쉬움보다는 그들은 하느님은 항상 특별한 사람을 뽑아 세우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는 고정된 방식이 몸에 익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게 복음 속 사람들은 예수님을 느낌으로는 하느님으로 알아듣고 있었으나 그들 중 선택된 사람 하나의 가치를 뛰어 넘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돌리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만약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신을 먼저 알리고 가르침을 주셨더라면 이런 질문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의미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제자들의 차이가 있다면 스승과의 거리감입니다. 늘 함께 지내는 이들이 예수님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생각할 틈도 없이 베드로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대답이 그를 교황의 자리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이 대답이 특별해보이는 이유는 이 제자가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하느님과의 거리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하느님에게서 온 분이심은 모두가 느끼는 그대로이지만 사람이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누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아주 멀리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을 벌주실 때는 너무나 가까워 무섭고 얼굴만 봐도 죽을 수 밖에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정성을 바치거나 간절히 청하고 싶을 때는 항상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생각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은 어찌보면 부족함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한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한계를 넘어서 눈 앞의 사람을 하느님으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평가는 그가 사람에게서 배운 것을 넘어섰다는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대답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생각을 읽으십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 베드로입니다. 자주 실수하고 잘못하고 어리석고 부족함이 드러나는 별 특징없는 인생입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별다를 것 없는 인생입니다. 늘 특별했던 하느님의 사람이 우리가 아는 바로 우리 자신일수도, 아니 우리보다 못한 사람일 수도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한계가 깨어지는 순간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기준도 깨어집니다. 평범한 세상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진리가 드러나고 담겨지는 불가능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니 이미 그렇다는 것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느끼기만 할 뿐 실제 자신들의 일로 여기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이미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 밝혀진 오늘 일을 선언이나 선포가 아닌 사람들이 알아들은 복음이 드러난 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음이 읽혀지고 듣기만 하던 것에서 정말 "기쁜 소식"이 된 셈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읽고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열쇠까지도 맡기십니다. 한번 풀리기 시작한 하느님의 진실이 또 하나의 편견과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 하나도 위태로운 사람이 하느님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기준을 쥘 수 있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이 기준에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서로 알면 알수록 부족한 사람들이어서 그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를 믿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조차 부정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확신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하느님을 알 수있다는 사실말입니다. 아니 그 전에 우리의 부족함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주님을 통해서, 그리고 베드로를 통해서 깨닫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막혀있는 한계들도 좀 뚫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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