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번 쯤은 조건없이 상대를 믿어보자/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3 조회수658 추천수15 반대(0) 신고
 
 

이탈리안 이발사

 

오늘은 학교를 마치고 평소에 걸어다니는 길이 아닌 생소한 길을 택했다. 나중에야 느낀 사실이지만 사실은 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그 길을 택하셨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반쯤 왔을까, 이발소 한 곳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이발한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때인데다가 적어도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듯 보이는 아저씨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기에 무작정 그 곳에 들어갔다.

그 아저씨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는데,정작 문제는 이발 의자에 앉아 목에 하얀 천을 두르자 마자 그때서야 내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저, 아저씨 죄송합니다. 제가 깜박하고 지갑을 안가져 왔네요. 금방 다시 올께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잠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하는 표정을 짓는듯 하더니 곧 바로 "뭐 그럴 수도 있지. 나중에 갔다 주면 돼. 일단 깍아." 하시는 것이었다.

아니, 한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이런 일이 다 있다니... 내가 지갑 속에 돈이 하나도 없이 이 곳에 온것도 낯선 일이지만, 그 아저씨의 반응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처음보는 나를 어떻게 믿고 이런 말을 하실까'하며 의아해 하고 있었고 감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들었던 가위를 놓고 저 쪽을 향해 '도미니꼬'하고 누군가를 부르니까 한 젊은 청년이 뛰쳐 나왔다. 그런데 어쩐지 '도미니꼬'하고 부르는 폼이 우리 한국말로 굳이 번역을 한다면 '야, 김군아'하는 정도로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탈리아 김군, 도미니꼬는 가위질부터초보티를 내면서 나를 불안하게 했다. 중간 중간 부족한 이탈리아 말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깍아 달라는 주문을 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외국어로 머리를 이렇게 혹은 저렇게 잘라달라는 표현이 너무 어려운데다가 이 이탈리아 김군이 또 완전히 초보이니 거의 한 시간이 지난 뒤의 내 머리는 어찌 됐을까? 으... 지금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 친구가 땀까지 흘려가며 내내 '곱슬머리가 아니라서 조금 힘들다'는 변명(?)을 늘어놓은것을 생각하면 그 수고가 감동스럽다.

거의 쥐 파먹은 영구머리를 한채 집에 돌아와서 돈을 챙겨 다시 그 이발소를 향해 가는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기는 커녕 발걸음이 경쾌하고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비싼 이 곳의 이발비인데도......

다시 이발소에 가서 '돈도 한 푼 가지지 않은 처음보는 나를 믿고 이렇게 훌륭하게(?) 머리를 잘라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하니까 그 아저씨와 이탈리아 김군 둘이서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은 당신이 돌아와서 돈을 지불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고맙다고하니 우리가 당신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혹시 신부님 아니세요?"

뜻밖의 질문에 깜짝놀라서 왜냐고 물으니까 그 아저씨가 그 때서야 당신이 현 교황정 국무원장이신 '소다노'추기경님을 비롯한 많은 교황청에 근무하시는 교회 어른들의 머리를 35년간 잘라왔다고 하시면서 '처음 보자마자 이 사람은 신부님(그 아저씨의 표현그대로)이다'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내 인상이 별로 좋지는 않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려도 좋을 만큼 내 얼굴 인상이 바뀌었나보다......^^

한참 동안을 셋이서 이야기 나누면서 얼마나 서로 행복해 했는지 모른다. 그 쯤 되니까 내 머리가 영구가 되어있든지 아니든지 아무 신경이 안쓰였으니까......

오늘의 내 경험을 떠나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은 아무 조건없이 타인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위험하기 짝이없고, 또 바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무모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바보스러운 믿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 세상에 대한 모든 경계를 잊은채 행복해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살면서 한번 쯤은 조건없이 상대를 믿어보자.

그래야 내가 백번쯤 실망을 한다해도 언젠가 한 번쯤은 오늘 내가 겪은 것과 같은 우스꽝스럽지만 너무나 감동스러운 믿음 속의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을테니까......

오늘 내가 체험한 믿음의 하느님 나라로 인하여 당분간은 내가 모델로 참여하는 작품 세계는 펼쳐지지 못 할것 같다. 그냥 열심히 세상과 사물, 그리고 사람을 찍는 사진작가로서의 작품 활동에만 전념해야지......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