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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2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3 조회수30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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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예수님의 무서운 진단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위선자가 된 이유를 설명해냅니다. 그들은 분명 겉으로는 하느님의 권능을 전하고 가르치는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성전에서 하는 행동들은 그것의 증거로 충분한 모습입니다.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의 십일조를 내는 그들의 모습은 전례를 거행하고 서약한 정결과 순명에 별 문제가 없으며, 상대적인 청빈을 지켜내며 주어진 일을 다하는 현대의 성직자에게서 발견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이 지적하신 것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라는 덕목입니다. 주님은 이것이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로 표현된 것은 하느님께 우리가 바치는 것들입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것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입니다.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과 사랑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믿음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 다른 말로 신앙생활이라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진정한 가르침은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이나 정성보다 하느님의 뜻을 지켜 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멀쩡하고 아무 문제 없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위선자로 불린 까닭은 그들의 삶의 내용에 이 부분이 빠져서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의무에 충실함을 통해 자신들의 자리에 당당함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그 모든 의무는 하느님의 진리를 지키고 알리고 나누기 위함이지 그 자리를 통해 얻어지는 것들을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키는 의무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통해서 세상에 전해지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비친 그들의 행동들은 하느님의 가치 대신에 자신의 명예와 부와 안락한 삶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는 수단일 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있어서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과 믿음이 전해져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자신들은 의인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이들 대부분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하늘 나라의 문을 닫어 걸고 자신들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이야기하면서도 하느님의 무자비한 심판과 지옥을 통해 사람들의 공포를 끌어내고 자신들은 보장된 미래의 주인공인 듯 행동했습니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결국 내용이 빠진 그들의 행동이 주님이 오신 이스라엘에 죄인들과 버림받은 이들과 마귀와 같은 이들이 가득했던 이유가 됩니다. 성전에는 하느님께 바치는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한데도 말입니다. 이유도 없이, 혹은 잘못된 이유로 바쳐지고 꾸며진 예물과 성전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어떠했겠습니까?


겉으로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주님이 화를 내신 것은 그들 만이 알아 들어야 하는 이유 없는 외침이자, 소란스러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여전히 견고하고 깔끔한 외투를 입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지키는 드러나지 않는 위선자의 분위기는 불행히도 현재에도 진행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누구의 지적이나 비판이나 반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모르기에 주님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고, 자신들의 삶에 발견되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거울처럼 자신을 항상 비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선에서 벗어나려면 차지한 겉모습에 이 내용을 실어야 합니다. 순서가 뒤집혔어도 급한대로 제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탐욕과 방종. 이 좋은 겉모습에 담긴 이것들이 몸에 너무도 달고 좋아 쉽지않습니다. 아니 어려운 것보다 싫어서 바꾸려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 하나까지도 보시며 아시는 하느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 말입니다. 세상 결코 본인이 아니면 바꿀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은 새겨야 할 말입니다. 주님은 위선자라는 말로 결정지어 끝내시지 않으셨으니 이제라도 고쳐야 할 때입니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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