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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면 없는 진실한 삶 - 8.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3 조회수44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1.8.23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1테살2,1-8 마태23,23-26

 

 

 

 

 

가면 없는 진실한 삶

 

 

 

대부분 약하고 힘없고 어려운 이들이 수도원을 찾습니다.

있는 이든 없는 이든 수도원에 오면 가면을 벗습니다.

사실 가면을 벗고

편안하고 진실해 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확보도 필수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가난한 이들은

가면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가난한 이들에 대해 무조건적 행복을 선언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정말 절실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을 믿는 진실한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기도할 때 가면은 저절로 벗겨지고 진실한 모습이 들어납니다.

 

하여 이런 가난한 이들이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습니다.

전 번 주일은

두 달 여 동안의 우기 후 오랜 만에 온 종일 청명한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날 어느 가난한 형제의 고백을 잊지 못합니다.

병약한 형제인데 계속 된 비로 제대로 일을 못해 곤경 중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침 밝은 해를 보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제부터 날이 좋아져 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가면 없는 가난하고 진실한 모습이, 고백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 새벽 하늘 역시 오랜만이 별들 총총한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저절로 떠오른 다음 시편 대목이었습니다.

“주님,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대부분의 시편들이 진실한 고백들입니다.

믿음, 사랑, 희망, 찬미, 감사, 기쁨 등

온통 진선미 하느님에 대한 고백들입니다.

이런 시편기도를 끊임없이 바칠 때 위선의 가면은 벗겨지고

저절로 진실, 겸손해지는 우리들입니다.

가장 진실하고 겸손해지는 시간이 주님 앞에 미사를 봉헌하는 이 시간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주님의 불행선언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民草)들에게 행복을 선언했지

절대로 불행을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불행선언의 대상은 늘 민초들을 업신여기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을 향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듭니다.

위선자들이라 지탄 받는 복음의 종교지도자들 역시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가면을 쓰지 않고 진실한 모습으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잘 지키는 이 종교지도자들의 가면을 벗으면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의로움과 자비, 신의가 없습니다.

 

십일조의 가치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주객전도의 껍데기,

가면의 삶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진실, 충실, 성실, 착실, 건실 등

열매 실자가 들어가는 실한 삶이 못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겉과 속이 같을 때 진실한 삶입니다.

겉과 속은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속이 깨끗하면 겉도 저절로 깨끗해지기 마련입니다.

궂이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점에서 복음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리석었고 진실한 삶에서 실격입니다.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눈 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겉을 꿰뚫어 속의 현실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가면도 하느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시급한 것은 밖의 청소가 아니라

마음 속 방종과 탐욕을 청소하여 진실하고 순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복음의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종교지도자들인 율법학자와 바라사이들과

대조적인 종교지도자들이 독서의 바오로 사도 일행입니다.

곳곳의 감동적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진정성 가득 담긴 진실한 지도자인 그리스도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복음의 위선적, 권위적인 지도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마침 새벽에 읽은 어제 조간신문의 1면 하단 소제목,

‘소득 늘어도 삶의 질은 제자리’라는 제하의 글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소득과 비례하는 행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면을 쓰고 사는 한 ‘참 행복’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진실한 삶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목표가 결여되어 있을 때

결코 ‘삶의 질’은 좋아질 수 없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가면은 벗겨지고

진실하고 겸손한 내 진면목을 찾는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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