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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24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4 조회수32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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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우리에게 예수님은 출생부터 승천의 순간까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중한 사건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기록들을 꺼내어 들고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이미 예언된 것이라 찾아내어 확인하고 하느님의 놀라운 이끄심과 구원이라 말합니다. 

분명 예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 약속된 분이셨고, 언제나 그 하느님의 약속에 충실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꼭 그런 분은 아니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제자 필립보는 나타나엘이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냥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분이라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증언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타나엘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로 예수님의 존재를 무시해버립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는 이야기는 다윗의 시대가 한참 흐른 뒤 지역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과 책에 남아있는 하느님의 이야기 대신에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자리가 더 중요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언된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날만한 곳이 정해져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와 함께 광야를 헤매던 시절이나 어린 다윗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던 때와는 달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고정된 형식의 제사와 신앙생활이 있던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에 나자렛이라는 동네는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고정된 하느님의 이미지는 눈 앞에 살아 숨쉬는 하느님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교육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런 그를 먼저 보시고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참 이스라엘 사람" 이라는 말이 어떤 뜻일까요? 나타나엘을 보시며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이 나타나엘을 의인으로 말씀하시거나 선한 사람으로 표현하시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건 이미 나타나엘이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모르실리 없으시기에 이 이야기에 호의적인 해석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타나엘을 나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거짓이 없다는 이야기는 나타나엘이 그 때 그 시절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드러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가지고 있는 지식 속의 하느님을 꺼내들고 있는 그대로 이스라엘의 상태를 드러내주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기대와 희망 속에는 나자렛에서 나온 하느님의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나타나엘은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나타나엘은 그래서 예수님께 기대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가 하느님을 만난 것과 같은 장면입니다. 그때 그는 자신을 이미 알고 있는 예수님께 놀랍니다. 자신은 만나게 될 하느님 앞에서도 그분을 알아보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던 나타나엘은 그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음을 듣고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필립보에게 듣고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모세와 예언자들의 기록들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입으로 눈 앞의 초라한 사람에게 고백하게 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하느님을 깨닫는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의 스승에게조차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 가르치던 하느님이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깊숙히, 그것도 아주 낮은 자리에서 특권이나 특별함 없이 함께 하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에겐 아직도 여전히 특별하고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랑이시라 말하면서도 그 사랑을 받기가 어렵고 그분은 구원이시라 말하면서도 그 구원은 항상 심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뽑으신, 보내신 사람 역시도 그런 모습이라 생각하는 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진실은 나자렛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고귀한 하느님을 섬기던 나타나엘은 결국 초라한 나자렛의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시선을 알았고, 이제 그분에게서 하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전히 좋고 고귀한 것에서만 하느님을 찾고있는 우리들도 오늘 복음을 눈여겨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가 희망을 두지 않는 그곳에서 참 구원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겠지만 그 사랑에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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