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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이 집은 구원을 받았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9 조회수517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주말에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해서 아마 이번 달에는 텅텅빌거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오신 걸 보니까 오늘도 또 제 예상이 어긋났는데....너무 반갑습니다.


이 성당 옆에 보면 아주 예쁜 꽃이 쫙~~ 피어있어요.

꽃대가 올라온 분홍꽃

그 꽃은 희한하게 이파리가 없어.

이파리는 봄에 나왔다가 이미 없어지고 그 자리에서 저렇게 꽃대가 올라오면서 꽃이 피어요.

저 꽃의 이름은 상사초, 다른 말로 상사화라 그래요.

서로가 그리워만 하는....이파리는 꽃을 못보고 꽃은 이파리를 못 보고...그래서 상사초 또는 짝사랑초라 그래요.


소싯적에.... 짝사랑 다 해보셨죠?

지금도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네~~

아이 큰일 났네...하기는 할머니들이 저를 무지무지하게 짝사랑 많이 해요.

눈빛만 보면 알거든요....^^

미사 끝나고 할머니들 등 한번 쓰다듬어주면 눈빛이 이상해요.

‘이 할머니는 나를 짝사랑하고 있는 분이구나!’


짝사랑의 좋은 점, 첫 번째가 선택이 자유롭다.

연상이든...연하든 상관이 없어요.

그 대상이 신부님이던 수녀님이던 상관이 없어요.

입으로 발설만 안하면...아무튼 선택이 자유로워!


두 번째 좋은 점이 뭐라 그랬어요?

돈이 안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뭘 사다 바치려면 돈이 자꾸 들어가는데

순수하게 속으로만 끙끙 앓는 짝사랑은 돈이 들 이유가 없죠.


세 번째 좋은 점이 뭐라고 그랬어요?

퇴짜 맞을 염려가 없어요.

‘나 너 좋아해’ 

‘나도 사실은 비슷한 마음 이었어.’

이게 아니라 ‘너 참 꿈도 야무지다. 네가 감히 언감생심 나를 넘봐?’

이렇게 퇴짜를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약국을 다니면서 수면제를 사 모으기 시작하고 죽느니 사느니 난리를 피지요.

왕년에 그런 경험이 있으셨던 분들......그런 분들이 여기 앉아 계시네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짝사랑은 시간이 지나고나면 아름다운 추억거리예요.


그러나 하느님을 짝사랑하는 것, 성모님을 짝사랑하는 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지요.

신앙인은 반드시 표현을 해야 하고 적극적이어야 돼요.

저 성당밖에 핀 상사화, 이별초... 다른 말로 짝사랑화는

꽃잎은 이파리를 그리워하고 이파리는 꽃잎을 그리워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지만

우리 신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성모님이 계신 곳에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치요?

비가 오는 게 문제입니까?

장마가 지는 게 문제입니까?

빙판이 돼서 차가 네 바퀴 도는 것이 문제입니까?

성모님을 만나 은혜 받기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족들을 데리고 매월 첫 토요일은 찾아온단 말이에요.


이 안에 들어오시지 못하는 분들은 밖에서 비 맞고 있고...

나를 불러주신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분심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화면으로라도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지 않느냐!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내가 가서 회개할 수 있는 장소라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소라면 거리 상관하지 않고 아마 전국에서 오셨을 겁니다.

교포들도 많이 오시고 개신교신자들도 여러 분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 가운데는 불자들도 여러 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런 것 따지지 않고 다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계획에 의해서 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여기 오기 위해 드린 정성에 비할 바도 안 될 정도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려고 성모님은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여러분이 구일기도를 했다면 성모님을 구십일기도를 했고

여러분이 15기도 했다면 성모님은 150기도를 하면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불렀음을 믿습니다.


오를 복음의 헤로데는 예수님이 나타나서 이적을 일으키니까 자기가 죽였던

세례자 요한이 환생했다고 여겼어요

헤로데는 늘 이 죄책감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어요.

헤로데아가 누굽니까?

제수를 가지고 취했어요.

세례자 요한이 ‘그게 어디 인간으로써 할 짓이냐?’

하니까 듣기 싫었지요.

감옥에 가뒀는데 헤로디아의 딸, 여우가 백 마리 들어가 있는 살로메가 오만 춤을 다 춰.

의붓아버지 앞에서 흐드러지게 여수를 떨면서 춤을 추니까

거기 와있던 헤로데를 비롯해서 남자란 남자는 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헬렐레~~ ~

“니 소원 다 들어줄게.”

“엄마 저 인간이 뭐든지 다 들어주겠데. 뭐 들어달라고 그럴까?”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해라.”

왕이 약속을 했으니 어떡합니까?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서 줬죠.

그때부터 헤로데는 늘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데 예수님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세례자 요한과 비슷하게 설교도 하고 하니까.

‘야, 내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구나.’

죄책감에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죄책감에서 해방이 되지 못할 때는 어느 누구나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제게는 참 괴로운 일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전화가 한통이 왔는데 본인은 냉담교우이고 나이는 스물여섯이라면서

‘엉엉...’  울며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열여섯 살에 시골집에서 가출해서 십년동안

술집, 다방, 창녀촌을 전전하면서 고향의 집에다가는 늘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속였답니다.

고향의 청년과 혼담이 오고가면서 결혼이 성사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직장에 충실하게 다니는 그 사람에게 자기가 창녀촌 출신이고 수도 없이 남자들과

몸을 섞었다고 하는 과거를 죽었다 깨도 밝힐 수도 없고....

만일 속이고 결혼을 한다면 언젠가는 어두운 과거가 밝혀질 것인데

그때 그 파장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이겁니다.

죄스럽던 과거를 영원히 속이면서 과연 행복한 결혼 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고민 고민 하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결심했는데....어릴 때 다니던 성당이 생각났고 아무

신부님에게라도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 털어놓고 죽고 싶어서 이렇게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있던 성당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114에 전화해가지고 아무데나 대달라고 그랬데요.

그때 청주시내에 성당이 20개가 넘었는데 그 교환수가 그 많은 성당가운데 하필 우리성당을 대줘?

“전화 끊지 말고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내가 도와주겠다!”

“신부님 저 지옥 가는 거 뻔히 압니다. 자살하면.....저를 기억해주세요.”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하며 설득을 했지만 그 아가씨는 너무너무 냉랭하게

“안녕히 계십시오.” 하며 전화를 딱 끊어버렸습니다.


며칠 뒤에 우연히 지방신문을 봤을 때 신문의 사회면에

[결혼비관 자살]이라고 하는 제목과 자살하게 된 내용이 실려 있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니까

바로 며칠 전에 나한테 전화를 했던 그 아가씨였고 나한테 했던 그 말이었어요.

사실 너무 괴로워서 몇 년 동안 아무에게도 그 말을 못했습니다.

사제로써의 한계를 느꼈고, 내가 한사람을 살리지 못했다고 하는 죄책감,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한 영혼을 망가뜨리고 그 아가씨를 자살로 몰고 간 이 죄의식에 대해 묵상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돌아온 탕자’에 대한 묵상을 같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들 ‘돌아온 탕자’ 이야기 너무나 잘 아실 겁니다.

수많은 영성학자, 문학가들의 잉크를 흘리게 했던 복음중의 복음이고

설교가들의 단골주제가였으며 비유 중의 비유인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살던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가 이 아들에게 가락지도 끼워주고, 옷을 입히고,

신발도 신겨주고, 살찐 송아지까지 잡아주니까 큰 아들이 성질이 나서 씩씩거리지요.

아버지는 그런 큰 아들을 달래는 것으로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돌아온 아들한테 아버지가 뭘 주었다 그랬어요?

첫 번째, 가락지...그리고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겼어요.

가락지는 권위를 나타내어요.

주교님들은 주교가 될 때 주교가락지를 낍니다.

명예를 나타냅니다.

신발은 자유를 나타내었어요.

노예들에게는 도망가지 못하게 신발을 안 신겼지요.

‘이제까지 너는 음욕의 노예, 음란의 노예였지만 이제부터는 자유인, 바로

내 아들이다.’ 라는 뜻으로 가락지와 옷과 신발을 신겼던 겁니다.


또 한 가지 살찐 송아지를 주었어요.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제일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 살찐 송아지였어요.^^

멍청하게 풀 뜯어 먹고 있다가 갑자기 한 놈이 돌아오는 바람에 그냥 고깃덩어리로 변했지요.

그러고 보면 남의 행복이 내 불행이 될 수가 있고...내 행복이 남의 불행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아가씨가 저에게 전화를 한 뒤에 자살을 하고 난 다음에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화두는

‘죄의식’ 이었어요.


돌아온 탕자 둘째 아들은 과연 그 집에서 행복했을까!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행복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읽는 성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거기서 계속 살아야 되는 둘째 아들이 과연 행복했을까!

처음에는 즐거운 일이요, 축하할 일이고, 경사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 잔치도 벌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그 감격과 축제의 순간이 지나가면서 실제적인 현실이 작은아들 앞에 닥칠 겁니다.

작은 아들에게는 정신적인 열등감이 있었어요.

과거의 죄의 허물...양심의 고발... 분명히 그를 괴롭혔을 겁니다.

또 육에 속했던 옛 생활의 향수가 그를 자꾸 유혹했을 거예요.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분위기도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형님의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돌아온 탕자는 적어도 이 세 가지를 극복하지 못하면 분명히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다시 탕자가 되었을 겁니다.

첫 번째, 과거에 대한 열등감입니다.

우리들도 역시 살아가면서 과거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때가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과거의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이 못 되었기 때문에 늘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했던 죄, 허망하고, 방탕하고, 교만했고, 방자했던....

죄와 허물 때문에 괴로워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자매님들 같은 경우는 낙태시킨 죄

낙태시키고 난 다음에 성사보고 죄 사함 분명히 받았고 죽을 때까지 보속하고 살면 되겠지만, 과연

내가 죽인 낙태아들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본당신부님이 일 년에 한 두번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비록 성사때 죄 사함은 받았어도

낙태시킨 죄에 대한 그 죄의식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죽은 아이를 치유시켜줄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임보’라는 교리가 있었습니다.

‘임보’ 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언저리, 변두리, 변방을 뜻합니다.

임보 교리는 뭐냐?

‘천국언저리에 낙태아들이 머문다.’ 그 뜻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에 의해서 처음 그 얘기가 나왔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에 의해서 교리화 되었지요.

사도신경할 때 그전에는 고성소가 지금은 저승으로 바뀌었어요.

여러분 생각하시기에 그 고성소가 어디인 것 같습니까?

연옥입니까?

아니지요, 고성소는 연옥이 아닙니다.

거기가 바로 임보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뱃속에서 무참하게 죽은 태아들이 치유받기 위해 기다리는 머무는 자리

‘임보’

그곳은 고통은 없지만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장소입니다.

태아들은 뱃속에서 죽으면 본죄는 없지만 원죄의 사함을 못 받고 죽었기 때문에 또 죽으면서 자기를

낙태한 그 부모를 얼마나 원망하고 저주하고 죽었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학설 중에는 ‘낙태된 아이들은 죽는 그 순간 천국에 들어간다.’

그것은 그 학자의 학설이지 교리가 아닙니다.


그 전에는 임보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쳤는데 지금 교회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도 역시 어둠이 우리 교회를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낙태된 아이들은 임보에 머물면서 치유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례받기 전에 낙태시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유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그 아이들, 어떻게 하면 천국에 보낼 수 있습니까?


세례는 세 가지가 있지요.

물로 받는 세례를 수세(水洗)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혈세(血洗)라고 그럽니다.

우도와 같이 세례 받은 적은 없지만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넘칠때는

예수님과 같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화세(火洗)라고 합니다.


세례는 수세와 혈세와 화세가 있는데 낙태된 아이들에게는 미사를 통해서 혈세와 화세를 베풉니다.

뱃속에서 죽은 아이들은 한평생 자기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그 아이들에게 천사의 본명을

지어주는 것이 전통입니다.

내가 낙태를 다섯 번 시켰다면 다섯명에게 천사의 이름을 붙여주십시오.

남성, 여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그냥 부모의 느낌으로 미카엘. 미카엘라,

가브리엘, 가브리엘라.... 이런 식으로 본명을 지어서 따로따로 미사를 봉헌하면 미사가 봉헌될 때

그 미사의 힘으로 임보에 머물던 아이들이 화세와 혈세를 받고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엄청난 치유의 은혜가 있는데도 사제들이 가르치지 않습니다.

수녀들도 교리 가르칠 때 가르치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첫영성체 배울 때 수녀님에게 분명히 그 교리를 배웠습니다.

아가들이 엄마 뱃속에서 억울하게 죽으면 천국에 못 가고 임보에 머문단다.

미사를 드려주면 그 아이들은 미사의 힘으로 천사들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우리 교회에 큰 치유방법이 있단다.


그 아이들, 화세 미사를 통해서 천국으로 보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십시오.

그 다음에도 죄의식이 오는 것, 그건 분명히 마귀의 장난입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미사를 드려주고 난 다음에도 죄의식이 또 찾아오면 구마기도 강하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사탄아 물러가라..우리 아기 천국에 가 있을 것을 내가 믿는다.

내 우리 아이의 몫을 대신해서 두 배... 세 배로 열심히 살 것이다. 너는 내 영혼 못 건드린다.

이제부터는 내가 기쁘게 살련다. 이제껏 낙태 때문에 늘 어렵고 죄스럽게 살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하느님의 자비로 해방된 것이라고 믿는다.


돌아온 둘째 아들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 하느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면 우리들은 절대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죄가 아무리 진홍색처럼 붉다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 정직하게 죄를 고백할 때는

이 세상 어느 죄도 하느님은 다 사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야만 영적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회개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됩니다.

영적 열등감인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특별한 은총인 고백성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줄은 많이 서있고, 올 사람은 많고, 시간은 급하기 때문에 정말

이 자매한테는 몇 마디 해줘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은 바짝 바짝 다가서고....

그러니까 듣고 보속만 줬습니다.

우리 카톨릭교회에 고해성사가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마태복음 18장 18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고

하늘에서 풀면 땅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9절

‘나는 너희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줄 것이다...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죄 사함의 보증을 못 받습니다.

개신교 신자들 여기 계실 텐데 罪지으면 여러분 어떻게 하십니까?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골방에 들어가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실컷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하니까 기분에

죄 사함 받은 것 같습니다.

‘이 죄인, 주님이 사해주셨어.’

그러나 지나고 나면 ‘내가 그때 지은 그 죄가 정말 사함 받았을까?’


위대한 심리학자요, 정신과 의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은 감각적으로 귀에다가 무슨 소리를 들어야만 믿습니다.

예수님은 사제의 입을 빌려서 우리들의 귀에다가 감각적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하나이다.’

하는 소리를 듣게 하십니다.


어느 회장님이 오랫동안 개신교에 있다가 천주교로 개종하게 된 동기가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그 회장님은 직업이 정신과 의사인데 논문을 쓰는 중에 카톨릭의 고해성사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될 그런 부분이 있었데요.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어떻게 고해성사를 압니까?

그래서 명동성당 고백실 앞에서 노트하나들고....6개월을 관찰을 했데요.

고백실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 얼굴을 보니까

‘야 저 두 번째 저사람 얼굴은 내가 2년은 치유해야 될 얼굴이야.’

죄를 고백하러 들어가기 직전이니까 얼마나 얼굴이 평화롭지 못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조그만 고백실에 들어가서 10분 만에 나오는데

세상에~~ 천사의 얼굴이 되어서 나오는 거야!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내가 2년을 상담해야할 저 환자가

10분 만에 해결하고 나오나? 방법이 없다.... 개종하는 수밖에

그래서 6개월 동안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 달 있다가 엽서가 왔어요.

[형제님 고백성사 보실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몇 시부터 성사를 드립니다.]

본인도 하루에 사람을 수십 명씩 사람 만나는 전문가지만 성사 볼 준비를 하고

고백소 앞에 서니까 가슴이 그냥 두근두근두근 뛰기 시작하는데 도대체가 마음이 진정이

안 되더래요.

고백소 문을 열고 장궤틀에 무릎을 꿇었는데 그 안에서 신부님이

“잘 오셨습니다. 첫 고백이니 만큼 오늘 잘 보셔야만 한평생성사를 잘 보시게 되십니다.”

“성호를 그으십시오. 세례 받은 지 한 달밖에 안되었지만 세례받기 전에 지은 죄는

고백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례 받고 난 다음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죄 지을 수 있으니

그 죄 고백하십시오.”

처음에는 입이 떨리고 마음이 떨려서 말이 안 나왔지만 고백소 안을 보니까 희미하게

신부님 옆에 서있는 또 한사람, 예수님을 본거예요.

예수님을 본 순간 울음이 복받쳐서 ‘엉엉~~’ 울면서 자기의 죄를 다 고백하고....

그 신부님을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겁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라.’

‘아~멘!’ 

‘아, 이거구나! 예수님이야말로 위대한 정신과 의사시구나...우리 귀에다가 내 죄 사함 받았던

것을 이렇게 알려주시는구나.’

예수님이 사제의 입을 통해서 너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시는

고백성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모님께서 발현하실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셨던 중요한 얘기가 고해성사인데,

특별히 모고해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

‘사제들아 교우들을 지켜라. 너무나 많은 내 아들딸들이 고해소 안에서 거짓고해를 하고 있다...

모고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단다...사제들아, 모고해는 마귀의

장난임을 가르쳐라.’

‘내 기필코 오늘 그 엄청난 죄를 고백할거야!’

고백소 앞에서 줄을 서 있을 때 마귀가 귀에다 대고 속삭이며 유혹을 합니다.

‘이놈아, 신부님이 너 누군지 아는데 그래도 얘기할 거야? 나중에 신부님 너 쳐다볼 때

눈빛이 달라질 텐데 그래도 얘기 할 거야?’

그 유혹에 넘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고백소에 들어와서 그 말을 안 하던지 아니면 음성 변조를 합니다... 지가 뭐 PD수첩이라고

 ‘셩부와 셩자와 셩령의........’

그런다고 못 알아듣습니까?

요거 꾸리아단장 목소리구나!

요거 본당총회장 목소리구나!

가까이 하는 신자들 목소리 알지요~~물론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걱정 붙들어 매세요. ~~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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