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31 | |||
---|---|---|---|---|
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8-29 | 조회수30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11년 8월 31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지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 속에서 너무 바쁘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그럴 이유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분주하시고 계속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일을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한사코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하나 하나 마음에 새기는 것과 달리 말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낳게 하시고, 갖가지 질병에 걸린 이들을 하나 하나 손을 얹어 낳게 하십니다. 물론 마귀들린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선 이른 새벽 그 말을 떠나 다른 곳을 향하고 계십니다.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찾아나선 마당에 예수님은 정작 그 자리를 작정하고 떠나셨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원하고 당신을 찾고 따라나서는 이들이 있음에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한 행동하시는 것은 우리에겐 이해하기 힘든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삶의 이유를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위해서라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님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좋은 마음은 알겠으나,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앙의 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오게 하셨으면 될 일인데, 그러면 더 많은 이들을 만나실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느 성당에, 어떤 강사에, 어떤 은혜에 끝도 없이 밀려들고 모여드는 사람들, 그들은 한사코 그곳에 가야 하느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저 평범하기만 한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도 말을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고까지 말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삽니다. 그러면서도 바쁘다는 인사를 많이 듣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오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손 한 번 올리면서 바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실 그 능력도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 개인의 노력이나 정성은 당연한 것으로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교까지 하면서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우리 입니다. 물론 움직이기도 합니다. 많은 양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내가 가겠노라며 말입니다. 하지만 들이 사는 곳이 아닌 그들이 모여서 기다리는 곳에 가는 것이라 극진한 대접조차 받아가며 가곤 합니다. 특강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함께 말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대단할수록 그 거룩한 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일들은 사람들을 사는 모습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시중을 든 것은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라 원래 손님에게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몸이 아픈 이들 하나 하나에게 손을 얹어주신 주님이지만 그들에게 영광을 받은 기색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하려 했을지 모르나 그들이 받은 것은 성해진 몸과 삶에서 만나는 가족과 이웃이 전부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떠나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하는 식대로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과 예수님을 별개로 놓고 저울질을 했을테구요.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삶보다는 예수님을 찾고 만나는 목마름에 주어진 삶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치 '왜 나를 찾는가?'하는 식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이미 할 일을 다 하셨다는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 진지하고 행복하고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셨지, 우리 중에 하느님께 잘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님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바쁘신 발걸음,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서 분주함이 아닌 기쁨을 느낍니다. 땀흘리며 걷는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시간낭비요 귀찮은, 쓸데없는 일일 수 있으나 분명 주님께는 그 새벽의 이른 시간 만큼 설레고 즐거운 땀방울이었으리라생각합니다. 움직입시다. 오라고 하지 말고, 모이라고 하지 말고 좀 갈수는 없습니까?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리스도처럼 함께 있어서 행복한 하느님의 복음을 가르칠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정성스레 지은 밥을 다 함께 즐겁게 나눌 수는 없을까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