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악령을 쫓아내신다. 구마행위를 하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의학의 발달로 정신질환의 감별과 함께 다소 잠잠해진 구마(驅魔)지만, 이것은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준성사 가운데 하나이며 예비자 교리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주위에 악은 실재(實在)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한번은 교리시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만일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면 모든 것이 선한 것인데 어떻게 악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창세 1,31 참조) 이에 교회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악은 교만해지려는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비록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지만 최고선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지만 아무튼 그것이 악이고, 그의 실재에 관해서는 34-35절까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명백해진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으니 말이다.
구마행위 가운데 주님께서는 악령에게 함구를 명령하신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시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성령의 이끄심과 더불어 순수한 당신 자녀의 자유의지로 고백받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악의 실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우리 신앙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것을 실감한다. 만일 우리 신앙이 싸구려 짝퉁 가방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훔쳐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영 신부(부산교구 해외선교: 일본 히로시마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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