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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 30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30 조회수581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22주간 화요일>(2011. 8. 30. 화)(루카 4,31-37)

 

<무섭지 않다고 무시해버리면>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시자 마귀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명령에 꼼짝도 못하고 복종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랍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루카 4,36)”

 

예수님의 ‘권위’는 마귀들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권위이고,

예수님의 ‘힘’은 마귀들을 실제로 제압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바로 복종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놀라기만 하고 예수님에게 복종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와 힘’에 놀라면서도

그 권위와 힘에 압도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마귀들에 대해서는 무서워하면서도

그 마귀들이 두려워하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구약시대 때에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권능과 권위가 무서워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는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바로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생각되었으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 용서, 구원,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내리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길을 잃고 다치고 병든 한 마리 양을 보살피는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양은 착한 목자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심판과 처벌로 위협하지 않고 사랑과 자비와 구원을 주시는 분이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옳은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점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와 권능에 압도되어서 그분 앞에 무릎을 꿇었고,

안 믿는 사람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무시했습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무시해버리는 태도가 바로 ‘오만(傲慢)’입니다.

 

교리에, 예수님이 종말에 재림하실 때에는

구원자가 아니라 심판관으로 오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서의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에도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서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때고,

복음서의 예수님은 누구를 심판하거나 처벌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종말, 재림, 심판 등에 관한 말씀들이

별로 위협적인 말씀으로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속된 말로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 안 무섭다.’ 라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은 그 ‘나중의 일’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지금의 예수님이 무서워서 달아난 것이 아니라

나중의 예수님이 무서워서 달아난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마귀들을 쫓아내시기만 했을 뿐이고,

완전히 죽여서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마귀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제거하는 것은 종말의 일입니다.)

 

‘지금’은 인간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글자 그대로, ‘나중에 두고 보자.’ 라고 하시면서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 아니니까 그냥 무시해버립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나중의 일’과 ‘지금의 일’이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 예수님과

종말에 오시는 심판관 예수님이 같은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사랑을 주시는 ‘지금’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받고 있을 때에는 오만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나중에 심판이 두려워서 회개하려고 하면 너무 늦어질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인간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마귀들은 알고 있었던 것,

마귀들이 두려워서 꼼짝도 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권위와 힘’,

그것은 바로 종말의 심판관으로서의 ‘권위와 힘’이었습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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