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청소년 돕기 행사의 준비위원장인 강지원 변호사(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 영담 스님(불교방송 이사장), 남상헌 신부(살레시오회 관구장)가 23일 한자리에 모였다. 최정동 기자 |
말라위 청소년을 돕는 일에 최근 불교와 천주교, (사)우리문화가꾸기회가 손잡고 나섰다. 이들의 초청으로 말라위 기술학교 학생 30여 명이 다음 달 21일부터 일주일간 내한한다. 때맞춰 경기도 양평의 세미원에 말라위 청소년을 돕기 위해 동전을 모으는 ‘자비의 연못’, 이들이 만든 공예품을 상설 전시·판매하는 ‘희망나눔갤러리’가 정식으로 문을 연다. 우리문화가꾸기회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부근에 연꽃밭을 조성, 생태공원 세미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주도해 온 단체다. 말라위 청소년 초청행사의 공동 준비위원장인 영담 스님(불교방송 이사장), 남상헌 신부(살레시오회 관구장), 강지원 변호사(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를 23일 만나 뜻을 모으게 된 사연과 의미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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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신부=살레시오회가 아프리카에서는 40여 개국에서 활동 중입니다. 그중 한국인 신부가 나가 있는 곳이 수단과 말라위입니다.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이 알려진 뒤) 수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분이 후원하겠다고 했고, 말라위는 온전히 저희 힘만으로 도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저희가 풍족하게 지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까웠던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문화가꾸기회에서 흔쾌히 제안을 받아 주셨고, 저희 힘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용문사와 불자님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희로서는 정말 거짓말 같은 일, 꿈같은 일이 참말이 되고 현실이 된 겁니다. 저도 순례회 둘째 날 세미원에 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도 가난한 시기를 겪어 봐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자는 데 이렇게 많은 분이 움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7월 초 경기도 양평의 생태공원 세미원에 용문사 호산 스님, 도선사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회에 참가한 불자 등이 모인 가운데 말라위 돕기 동전 모으기 행사가 열렸다. [우리문화가꾸기회 제공] |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
남 신부=저희 살레시오회는 가난한 청소년들이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술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가 한국에 1954년 처음 들어왔을 때도 기술학교를 시작했고요. 말라위의 기술학교는 수도 릴롱궤 부근에 있는데 멀리서도 기술을 배우러 오는 학생이 많다고 합니다. 이들이 머물고 잘 곳이 필요합니다.
영담 스님=돈을 주고 양식을 주는 것보다 기술을 가르쳐 줘서 자립할 수 있게 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또 이번 일은 한 사람의 독지가가 많은 돈을 내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힘을 모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초청된 말라위 아이들이 좋아서 잠을 못 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고 크면 그 나라에서 자기들 힘으로 이런 운동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강 변호사=기술학교에 농업과를 신설하는 일도 도우려 합니다. 말라위는 중심부에 큰 호수가 있어서 관개시설을 갖추면 농업이 유망하다고 합니다. 영담 스님 말씀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얼마만큼 발전할 수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비전과 꿈을 키워 갈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 말라위 아이들이 일주일 머무는 동안 문화시설을 관광하고 학교와 산업현장을 고루 돌아볼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다종교 체험도 합니다. 명동성당도 가고 용문사도 갑니다. 여건이 허락하면 용문사 템플스테이도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남 신부=말라위 아이들과 한국 살레시오 기술학교 아이들이 만나는 기회도 마련하려 합니다. 서로 우정을 맺고 키울 수 있게요.
강 변호사=이번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건입니다. 양쪽 종교 지도자 분들의 열린 마음 덕분에 가능한 일이고, 이게 더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세계 온갖 종교가 다 와 있는 나라인 동시에 종교전쟁 같은 큰 충돌이 없는 나라입니다. 가끔 시끄러운 일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종교 간에 서로 잘 지내는 나라입니다. 저는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온갖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긴장이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에, 노사 간에 화합을 얘기하기에 앞서 정신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종교 간에 화합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나눔의 실천, 종교 간 화합의 실천
영담 스님=조계종에는 화쟁위원회라는 것이 구성돼 있습니다. 사회 갈등을 화쟁(和諍)으로 풀어 가자는 취지입니다. 화쟁은 원효 스님의 사상입니다. 다툼 없이 하나로 화합시키자는 의미입니다. 종교는 많은 분에게 편안함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면 종교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지요. 이번 일처럼 종교 간에 함께 좋은 일을 하는 건 그런 편안함을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강 변호사=화쟁이 아마 서구식 개념으로는 통합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그런 것이겠지요.
남 신부=이번 일은 화쟁이나 통합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화쟁과 통합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점에서도 조계종 스님들, 불자님들, 우리문화가꾸기회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문화가꾸기회에서 제안을 받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입니다. (단체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일이 이처럼 커지는 과정을 보면서 정말로 다 뜻이 있다는, 사람의 마음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일, 아름다운 일에 누구나 나서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봅니다. 이를 실천하고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를 어떻게 제공할 것이냐 하는 것은 사회를 바꾸는 데 하나의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강 변호사=우리문화가꾸기회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세미원은 청소년들에게 자연의 진수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국유지를 활용해 5000평 땅에 연을 심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6만 평으로 커졌습니다. 여기서 동전을 모으고 외국의 청소년까지 돕게 된다는 건 저희로서는 정말 큰 보람입니다. 연이라는 식물은 참 대단합니다. 물을 정화시키는 능력이 엄청납니다. 나아가 연잎·줄기·꽃·열매 뭐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세미원(洗美苑)은 관수세심(觀水洗心), 즉 물을 보면서 마음을 닦고, 관화미심(觀花美心), 꽃을 보고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는 옛글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영담 스님=불교에서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고도 합니다. 연꽃은 깨끗한 곳을 골라 피지 않습니다. 진흙 속에 피면서도 더러운 것이 묻지 않지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남 신부=이번 일을 통해 저희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말라위 청소년들에게도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움 존재인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꿈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일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피부색이나 연령을 초월해 누구나 누려야 할 기쁨 중 하나라고 봅니다.
세미원(www.semiwon.or.kr)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가까운 국유지에 연을 심고 가꿔 조성한 생태정원. 경기도와 양평군의 지원을 받아 (사)우리문화가꾸기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7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에게는 입장료 3000원을 받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현지 농산물을 준다. 매주 월요일 휴관. 세미원과 말라위 돕기에 대한 문의는 031-775-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