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남에게 자신의 인상을 가장 쉽게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돈이나 인맥이 아니라 바로 인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인사는 어떠한가? 그리스도인은 전례에서 인사를 통해 호감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앙을 밝힌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에 대해 가장 간단명료한 신앙고백인 성호경을 바친 뒤, 주례자의 인도에 따라 서로 인사를 나눈다. 이 인사말은 일반적이지 않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교회의 전통적 인사이므로 누구와 함께 거룩한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인지 확인한다. 곧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고 약속하신 주님의 현존을 공동체에 알린다(<미사경본 총지침> 50항). 그렇다면 교회는 주님의 현존을 어떻게 공동체에 알리고 있을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코린 13,13). 코린토 2서의 마침 인사가 이제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여는 시작 인사가 되었다. 미사의 주례자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인사하면, 교우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 하고 응답한다. 이 인사에는 삼위의 특성, 곧 성부의 ‘사랑(caritas)’, 성자의 ‘은총(gratia)’, 성령의 ‘일치(communicatio)’가 나타난다. 그 뜻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내리시는 은총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이러한 은총과 사랑을 실현하시는 성령께서 베푸시는 친교를 통한 일치의 힘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이다. 동방 교회는 이 인사를 중세기부터 ‘아나포라(anafora, 서방의 ‘감사 기도’)’ 직전의 대화에 사용하였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1코린 1,3; 2코린 1,2; 갈라 1,3 등 참조). 이 인사는 바오로 서간 서두에 자주 나오는 초대 교회의 전형적인 편지와 전례 인사이다. 미사에서는 “은총과 평화를 내리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사하시는 구원을 표현하는 은총과 평화를 강조한다. 특히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 전체를 종합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2코린 8,9 참조). 여기서 ‘평화’는 ‘내적 평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와 하느님 관계의 ‘온전함’을 표현한다(로마 5,1 참조). 이는 유다인의 평화 인사에 그리스도의 구원 의미를 덧붙여 그리스도교 인사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인사가 옛 안티오키아 전례와 라틴 전례의 주교 미사에 나타난다. 현재 쓰는 한국어 미사경문에서는, 주례자가 이 인사를 하면 교우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 찬미받으소서”라고 응답한다고 제시되어 있다. 이 부분은 1970년에 반포된 《미사경본(Missale Romanum)》 부록에 실린 것이다. 2코린 1,3과 1베드 1,3의 찬미가 첫머리에서 따 온 이 응답은 유다인의 대표 기도 ‘브라카’의 첫 부분이라는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사목적 면이나 한국어 미사경본 적용 면에서 문제가 있다. 곧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이 이 응답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제의 인사를 잘 경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1970년이나 2002년 라틴어 표준판의 미사통상문(Ordo Missae)에서는 모두 “또한 사제와 함께(Et cum spiritu tuo)”라고 응답하라고 되어 있다. 한국어 미사통상문에서 이 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룻 2,4; 1열왕 1,37; 루카 1,28; 2테살 3,16 참조). 신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인사이며 초세기 이래 가장 널리 사용하는 전례 인사이다. 비오 5세 미사경본의 통상문에는 일곱 번, 현행 바오로 6세 미사경본의 통상문에는 네 번 나온다. 이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는 인사인데,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한 몸을 이루고 그분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현존의 잔치인 미사를 이 인사로 시작하여 그분을 모시고 그분과 완전히 일치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 인사를 전례상 처음으로 말해 준 것은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인데, 그는 주교 서품 이후 감사 기도 시작에서 언급한다. 주교는 전통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하신 인사대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요한 20,19; 루카 24,36 참조)라고 인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설날의 독서로 민수기 말씀을 듣는다. 그중에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민수 6,24)는 말씀에서 복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깨닫는다. 성경에서 히브리어 ‘바락(barak)’, ‘베라하(bera’ha)’는 하느님의 강복을 의미하면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축복과 찬미의 응답도 의미한다. 미사 시작 부분의 인사는 복 자체이신 주님의 현존에 대한 기원이자 찬미이다. 이 의미를 새기며 미사에 참여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의 순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3월호(통권 456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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