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속 성경 한 말씀] 감사 기도에 담긴 성령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성령 강림 대축일의 복음 환호송). 성령은 교회의 생명이요 힘이다. 그래서 성聖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을 주시는 주님>(1986년 5월 18일)에서 “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은 창조와 구원의 역사 전체에서 성령께서 이룩하신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성 토마스의 설명대로, 그것은 최상의 은총 - 일치의 은총 - 이요, 다른 모든 은총의 원천인 것입니다”(50항)라고 하며, 창조와 강생의 신비에 함께한 성령의 역할을 확인하였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성경은 온 세상과 우주의 창조 순간에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고 증언한다. 여기에서 ‘영靈’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루아흐(ruah)’로 ‘입김, 숨결, 바람’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바로 이 하느님의 숨결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고백하면서, 세상과 인간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하느님의 영이 저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제게 생명을 주셨답니다”(욥 33,4) 하고 고백했다. ‘루아흐’는 신약에 와서 ‘프네우마(pneuma)’라는 그리스어로 번역되는데,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요한 복음서는 “하느님은 영이시다”(4,2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특히 14-16장에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는 표현으로 ‘보호자’(16,8), ‘진리의 영’(16,13)인 성령에 관한 신학적 성찰과 전망을 전한다. 세상 창조뿐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과 활동에 동반한 성령은 이제 강림하여 교회에 머물며 생명력을 불어넣고 인도하는 ‘교회의 영혼(anima Ecclesiae)’이 된다. 성령은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교회가 자기 신원을 드러내고 주님의 현존을 지속하도록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저희 모두가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미사의 감사 기도에 하느님의 성령을 청하는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가 두 군데 있다. 성찬 제정문을 외우기 전에 하느님께서 예물을 축성하시어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하는 ‘축성 기원(epiclesis consecrationis)’, 성체 축성 후 깨끗한 제물을 영하는 이들이 한 몸을 이루게 해 달라고 청하는 ‘일치 기원(epiclesis communionis)’이다. 빵과 포도주가 성체성혈로 변하는 축성 시점을 동방과 서방은 다르게 해석해 왔다. 동방은 성령을 청하는 ‘축성 기원’으로, 서방은 예수님의 말씀인 ‘성찬 제정문’으로 축성이 된다고 설명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을 통해 축성에 관한 성령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에는 감사 기도 전체가 축성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감사 기도 제1양식인 로마 전문(canon romanum)의 축성 기원은 “주 하느님, 이 예물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강복하시어 참되고 완전한 제물, 사랑하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이다. 그 원천은 4세기의 암브로시오 시대까지 올라가며 현재와 같은 기도문은 7세기의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성사집에 나타난다. 성령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그 역할에 대한 청원은 분명하다. 예물을 변화시켜 모든 요건을 갖춘 완전한 제물,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해 달라는 기도이다. 다른 감사 기도의 ‘축성 기원’은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키는 축성의 주인공임을 명백히 한다. 제2양식은 손을 펴 예물 위에 얹으면서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할 것을 규정한다. 제3양식도 “저희는 그리스도의 명을 받들어 이 신비를 거행하나이다”를 덧붙여 축성 기원이 감사송과 성찬 제정문을 연결시키며, 미사의 절정인 성찬 제정문을 직접 준비하는 기도임을 밝힌다. 제4양식 역시 “그리스도 몸소 저희에게 영원한 계약으로 남겨 주신 이 큰 신비를 거행하게 하소서”를 덧붙여 십자가의 제사가 새로운 계약이며, 이 자리에서 재현되는 크나큰 신비(에페 5,32 참조)임을 고백한다. 일치 기원의 성령 청원은 ‘성찬 제정문’, ‘기념과 봉헌’ 다음에 위치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음식으로 주신 주요 동기 가운데 하나는 이 음식으로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서로 한마음 한 몸을 이루며, 그를 통해 사람들을 당신께서 이룩하신 구원에 참여시키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친교와 구원이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일치의 원천이신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기도는 참된 일치가 이루어지는 영성체 준비 기도라 할 수 있어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는 말씀을 상기시킨다. 특히 제4양식은 성찬이 지닌 제사와 식사의 이중 특성, 예배와 실천 생활이 적절히 조화되기를 기도하다.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입김(성령)을 불어넣어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젠 성령과 주님의 말씀으로 축성된 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일치하여 자신을 영적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다. 자신을 봉헌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성령의 도움이다. 고무풍선에 공기가 들어가야 풍선이 제 역할을 하듯,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어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사도로 거듭나게 한다. 세상에 관심을 두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경향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마음을 두게 하는 성령을 따르기를 오늘도 다짐한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7월호(통권 472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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