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주님의 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24)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을 때 현지 가이드가 “이곳에서는 상점에 가기 전에 그 상점의 주인이 무슨 종교를 믿는지 먼저 알아 두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때 ‘상점 주인의 종교가 물건을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니 ‘아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에는 세 종교가 공존합니다. 먼저 유다교를 믿는 이스라엘인은 안식일 규정에 따라 토요일에 쉽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일이라고 하는 일요일에 쉬지요. 마지막으로 이슬람교인은 무함마드가 메카를 탈출한 금요일에 쉽니다. 이렇게 각기 쉬는 날이 다르기에 미리 상점 주인의 종교를 확인하고 물건을 사러 가야 허탕치는 일이 줄어듭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주일(Kyriakē hēmera)”이란 명칭은 요한 묵시록(1,10)에서 처음 발견되며, 5세기 이후에는 ‘태양의 날’(일요일)이란 이름을 대신하여 사용되었다. 게르만어권에서는 여전히 태양과 관련된 이름(독일어 Sonntag, 영어 Sunday)이 남아 있지만, 라틴어권(프랑스어 dimanche, 이탈리아어 doménica, 스페인어 domingo)에서는 ‘주일’을 사용한다. ‘태양의 날’을 주일이라고 부르게 된 계기는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마르 16,2)에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구원자인 ‘그리스도’, 곧 ‘주님’으로 드러나셨기 때문이다. 주일의 휴식은 창조주의 휴식에서 기인한다 그리스도교의 축제 중에 제일 먼저 생겼으며, 전례주년의 근원적 기준이 되는 주일은 기본적으로 휴식의 의미를 지닌 안식일과 연결되어 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로 시작하는 창조 이야기는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1-2)로 우선 마무리된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인간의 모습처럼 묘사하였다. 하느님의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활동의 한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계명에 대하여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하고 말씀하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일하고 계신다. 이렛날에 하느님께서 쉬셨다 함은 하느님의 활동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의 충만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 손수 하신 ‘참 좋은’(창세 1,31 참조) 일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기쁨과 환희에 찬 시선을 보내시는 것이라 하겠다. 농부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열매를 맺은 땅을 보며 흐뭇해하는 광경이 연상된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창세 2,3) 복과 거룩함이 가득한 이렛날! 이는 모세의 십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탈출 20,8) 하고 분명하게 지켜야 할 계명으로 자리 잡았다. 성경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며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상기시킨다.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탈출 20,11). 계명은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기에 앞서 무엇을 기억하라고 권고한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은 창조에 대한 기억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쉬신 것처럼 우리도 쉬면서 그분께 찬미와 감사를, 자녀로서 사랑을, 배우자로서 우정을 바치며 그분께 모든 피조물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그럴 때 그날은 거룩해진다.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결정적 시간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에 안식일 다음 첫째 날을 축일로 삼았다. 이날에 주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일의 ‘영적’ 의미가 완전히 실현되었다. 인류의 첫 번째 안식일에, 하느님께서 무無에서 창조한 모든 것을 보며 만족해하시던 그 기쁨이, 그리스도께서 부활 주일에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화와 성령을 선물로 주시던 기쁨(요한 20,19-23 참조)에 나타나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안식일”에서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로, 이렛날에서 첫날로 옮겨져 주님의 날은 그리스도의 날이 되었다. 사도 시대부터 ‘주일’은 새로운 탈출인 파스카 신비의 핵심과 긴밀히 연관되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상기시킨다. 주일은 매주 반복해서 돌아오는 부활이며,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창조의 완성과 ‘새로운 창조’(2코린 5,17 참조)의 시작을 경축한다. 곧 “주일은 세상이 생긴 첫날을 감사와 흠숭의 마음으로 상기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오시어(사도 1,11; 1테살 4,13-17 참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묵시 21,5 참조) ‘마지막 날’을 힘찬 희망으로 고대하는 날”(요한 바오로 2세 교서, 〈주님의 날〉 1항)이다. 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의 날이라기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구원자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미사에 참례하여 거룩하게 지내는 날이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사랑으로 응답하는 날이 주일이라 하겠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8월호(통권 473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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