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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독서대, 에덴이며 부활의 정원(창세 2,16-17; 요한 19,41; 느헤 8,4)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6,535 추천수0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독서대, 에덴이며 부활의 정원(창세 2,16-17; 요한 19,41; 느헤 8,4)

 

 

본당 신부를 하다가 신학교에 상주하게 되면서 달라진 저의 일과 중 하나는 낙산을 산책하는 것입니다. 아침을 먹고 동료 신부들과 낙산의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걷다 보면,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가 생기고 한 가족이라는 연대감으로 더 단단해집니다. 함께 걷는 것,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 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본당에서 신부들이 마당을 함께 거닐며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신자들은 “보기가 참 좋네요”라며, 자신의 창조물을 보시고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신 하느님을 따라합니다. 보기 좋은 그 일을 거의 매일 한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하느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

 

우리는 미사 안에서 하느님과 산책하며 구원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간이 바로 ‘말씀 전례’이며, 그 장소는 바로 ‘독서대’입니다. 전례학자 치프리아노 발렌시아노 신부는 “상징적 측면에서 독서대는 (예수님의) 빈 무덤이며 보편 세상에 파스카 선포의 효과적인 현존”이라고 제시하고, 그 근거를 요한 복음서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요한 19,41)라는 이야기에 둡니다.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역시 이를 근거로 독서대를 “거룩한 무덤의 이콘으로, 천사는 돌을 옆으로 굴리고 그 위에 앉아서 여인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다”(PG 98,392)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묻히신 정원의 무덤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 함께 지냈던 “에덴 동산”(창세 3,23)을 상기시킵니다. 이 동산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 칠십인역에서는 ‘에덴 동산’을 “기쁨의 동산”으로 옮깁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하느님과 함께 지내던 에덴, 곧 기쁨의 동산에서 쫓겨난 것 자체가 인류에게는 크나큰 슬픔이며 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강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로 처음의 그 동산, 곧 하느님과 쉽게 만나는 그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 전례를 행하는 독서대에서 에덴 동산의 정원과 예수님이 묻히시고 부활하신 정원의 의미를 구원 신비 안에서 들려주고 설명합니다.

 

 

독서대의 역할과 그 변화

 

독서대(라틴어 ambo)라는 단어는 ‘오르다’라는 뜻의 그리스어(anabainō)에서 유래하는데, 그 기원은 구약성경에서 비롯됩니다. 즉 바빌론 유배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학자 에즈라가 율법서를 봉독하기 위해서 “나무 단 위에 섰다”(느헤 8,4)라는 구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형태는 유다인의 회당(synagōgē)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설명하는 베마(bēma)라고 하는 약간 높은 단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 유다교의 회당 구조에서 영향을 받았기에, 회중이 잘 볼 수 있도록 제대 근처 조금 높은 곳에 독서대를 마련하여 독서자와 부제가 올라갔음을 4세기 말경의 문헌 《사도 헌장(Constitutiones Apostolorum)》과 《사도들의 가르침(Didascalia Apostoloru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라오디케이아 공의회(371년) 문헌 15항에서 발견됩니다. “성당에서 시편을 노래하거나 규정에 따라 독서를 공적으로 수행하도록 위임된 사람이” 아니면 독서대에 오를 수 없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독서대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7세기에 들어서 비잔틴 계통의 사람들을 통해 독서대를 도입하게 됩니다. 독서대 하나에서 성경의 낭독과 시편 낭송 그리고 강론이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곧, 독서대는 말씀 전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한때는 독서대를 두 개 마련하여 한쪽에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서간을 읽고, 다른 쪽에서는 복음을 낭독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신자들과 상관없이 사제 혼자 미사를 드리는 것이 관행이었던 중세에 와서 독서대와 설교대(pulpitum)는 분리되었습니다. 신자들이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사제 혼자 독서를 낭독하는 관행이 생겨 독서대는 점차 말씀 전례의 중심이 아니라 단순히 책을 받쳐 놓는 자리가 되었고, 나중에는 제대 위에 올려 놓는 책받침대로 전락했습니다. 반면에 설교대는 성당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신자들은 말씀 전례의 중요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정원인 독서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예비미사로 취급받던 말씀 전례가 본래의 가치를 되찾습니다.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부분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오직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미사경본 총지침》, 28항). 그래서 교회는 성경이 봉독될 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고 강조하며, “전례의 중요한 요소인 하느님 말씀을 봉독할 때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29항)라고 말씀을 대하는 각별한 마음 자세를 권고합니다.

 

독서대는 말씀 전례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그리스도께서 복음, 곧 구원의 신비를 선포하시는 장소입니다. 또한 에덴 동산의 정원에서 하느님과 거닐며 대화를 나누던 처음 상태로 인류를 돌려 놓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어 구원 역사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말씀의 정원’입니다. 이 정원에서 여러분에게 건네시는 하느님 사랑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으시렵니까?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0월호(통권 475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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