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월 3일 토요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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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9-03 | 조회수643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
9월 3일 토요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루카 6장 1-5절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참으로 놀라운 인간 존재>
인간 존재라는 것,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재미있는 존재이며 정말 ‘연구대상’입니다. 어떤 인간을 보면 한 인간이 어떻게 저토록 망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저렇게 포악해질 수 있는지, 두려움마저 들게 합니다.
또 어떤 인간은 십자가가 따로 없습니다. 아마도 전생부터 악연인가 봅니다. 사사건건 나와 맞지 않고 그는 어쩌면 내 인생에 고춧가루를 뿌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사람같이 집요하게 나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모습의 인간을 봅니다. 깜짝 놀랍니다. 행동 하나 하나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저 존재 자체로, 그의 있음 자체가 내겐 행복입니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이 환해집니다. 나란 존재가 의미를 되찾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닙니까?
다른 동물이나 사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역할을 해내기 못합니다. 너무나 예뻐 늘 끼고 다니는 강아지라 할지라도 내게 궁극적인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기품 있고 예의 바른 페르시아 고양이라 할지라도 내게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한 인간에게 빛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넘어져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결국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군요.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힘차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때로 그런 생각도 자주 합니다. 우리 부족한 인간의 눈으로 봐도 한 인간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하느님의 눈으로 보신다면 얼마나 더 사랑스럽겠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그럴듯한 법이나 있어 보이는 제도, 오랜 전통들, 관습들, 목숨 거는 규칙들은 과연 왜 만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인간 공동체가 좀 더 행복해지도록, 인간의 복지와 권익보호를 위해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법이 사람 위에 군림합니다. 규칙이 사랑 위에 자리합니다. 그렇다면 그 법이나 규칙을 잘못 되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우리 옛말이 있습니다. 배고픈 아이가 있으면 그가 어떤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우선 먹이고 봐야 합니다. 먹이고 나서 법을 따지든 원칙을 따지든, 야단을 치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크게 아프면 만사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아무리 원칙을 중시하는 단체라 할지라도 사람이 아프면 열 일 제쳐놓고 일단 치료를 받게 하고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런 면에서 우리의 예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고통당하는 것을 절대로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 각자 모두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철저하게도 한 인간 각자 각자를 존중해주십니다. 각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시고,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셨습니다. 만물 위에 인간이란 존재를 두고, 그의 성장과 구원, 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습니다. 아파하는 한 인간을 치료하는 일, 마귀 들려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그것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셨기에 꼬일 데로 꼬인 법, 인간을 완전히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안식일 규정을 보란 듯이 무시하십니다. 아니 파기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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