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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0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3 조회수307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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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어떤 종교든 신앙의 규칙이나 규범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신앙을 가진 이들의 모든 삶의 중심이 되고 가르침이 되어 그들의 모습을 또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있게 하는 원리가 됩니다. 그러나 같은 글로 적혀 있는 같은 모습의 규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활에 적용되고 드러납니다.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예수님은 안식일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십니다. 


'안식일을 거룩히지내라' 는 하나의 율법을 가지고 바리사이들과 예수님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주님의 해석이 더 없이 중요하지만, 이야기 속의 바리사이들의 생각은 그들의 독특한 해석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었던 보편적인 율법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율법을 생각하고 계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같은 율법에 대한 서로 다른 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므로 모든 율법은 주님의 마음대로 바뀔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할까요?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율법은 어겨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여겨야 할까요?


그러나 예수님이 이 율법은 헛되다 말씀하신 적 없으시고, 오히려 이 율법 아래 벌어진 조상들의 사건을 말씀해주셨음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야기 속의 다윗은 하느님의 아들도 아닙니다. 그가 율법 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어긴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이유에는 그 일행의 배고픔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이전에 다윗의 이야기를 꺼내드신 이유는 율법이 하느님이 사람의 생명과 바꾸어야 할 신앙의 지표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었던 다윗이 배고픈 일행을 위해 스스로 먼저 빵을 집어 먹고 일행을 먹여 살린 이야기가 하느님 율법에 닿아서 죄가 되었던가를 예수님이 물으시는 이유는 너희에게 '율법이 무엇인가?'를 묻고 계신 겁니다. 


이 시비의 이유가 되었던 사건은 안식일에 배고픈 제자들이 밀밭에서 밀 이삭을 훑어 먹었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이가 이삭을 먹는 것이 죄가 되지 않았던 이스라엘에서 이 일이 시비가 된 것은, 안식일, 곧 하느님이 세우신 법이 그들의 배고픔을 그대로 방치해버리는 넘지 못할 벽이 되어 버린 셈이 됩니다. 

어떤 이들은 '하루 단식하고 하느님께 봉헌하고 내일 먹으면 되지' 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정성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생활 일부를 잘라내어 당신께 드리라고 명령하실 분이라고 보기에 그분이 만드신 우리의 모든 시간과 공간과 삶이 그분의 것이라 이런 해석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께 어울리는 해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건 어쩌면 평소의 삶을 하느님과 관계 없이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들이 반대로 하느님께 드리는 정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오는 태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느님이 안식일을 정하시고 거룩한 날로 세우신 모습은 그 날 창조의 일을 멈추시고 모든 것이 서로 어울려 질서를 이루심을 보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의 생명이 홀로가 아니라 서로 어울려 질서를 이루고 서로를 살리며 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스스로를 위해 주어진 날이 아니라 모든 것을 위해 스스로를 내려 놓는 날, 그래서 멈추는 날이 아니라 생명을 느끼고 살려내는 날이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안식일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고, 배고픈 이가 이삭 몇 알로 생명의 위안을 느끼는 것은 안식일의 참 의미가 더 잘 드러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이야기가 말하는 안식일의 의미를 더 잘 새겨 보려면 이스라엘의 추수의 풍속에서 찾는 것이 더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수가 끝나고 밭에 떨어진 이삭들을 주인에게 거두어들이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고아와 과부들이 줍도록 법으로 정한 이유는 밭과 이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주인에게는 일을 멈추는 것을 말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 힘들고 어려운이에게 삶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인은 일을 멈추고, 과부와 고아들은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힘없는 이들의 모습을 주인이 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수호하려 했지만 그들이 그 수단으로 삼은 것은 배고픈 이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죄인으로 내몰려 한 것이 힘 없고 어려운 이들의 배부름이 아닌 허기를 면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제자들 앞에서 이야기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율법을 세우신 이유는 그것으로 우리의 신앙심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우리 삶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기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법을 사람을 죄인과 의인으로 나누고 심판을 통해 골라내는 식의 판단의 칼날로 여기는 시선을 거두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율법을 위해 사람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을 주셨고, 사랑을 주셨고 삶을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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