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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듣기 좋은 소리보다 사랑이 먼저다 -반영억라파엘신부-연중23주일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4 조회수432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23주일 (마태18,15-20 : 로마13,8-10 : 에제33,7-9)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적 충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교회는 교회에 해를 끼치면서 못된 짓을 하는 형제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교우들 사이의 화목과 일치라는 내적인 요구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고, 또 교회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생겨났기에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그 친교 안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들의 믿음과 성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었다. 아무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친교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지혜와 인내를 가지고 듣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관습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지은 죄를 확인하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법정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는 판단과 행동의 기초를, 정의보다는 죄를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자비에 두어야 한다. 형제가 잘못을 계속하더라도 교회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안 된다. 형제적 친교를 유지한다는 것은 교회가 그를 위한 기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고 그들과 함께 기도 하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주님보다 먼저 교회가 형제를 단죄하고 파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가 제 형제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카인은 아벨과 연대감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도 우리의 형제들에게 연대감을 느끼지 못한다. 빌라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손을 씻으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주의를 주신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잘못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법은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을 도와 주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죄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잃게 될 위험에 있는 사람을 도와 주지 않을 때에도 벌을 내린다(제1독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이것을 하지 마라.저것을 하지 마라."와 같은 많은 계명들로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금지하시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데려다 주신 이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게 하신다. "법"은 우리에게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제2독서).

교회를 하나의 사회 제도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누구든지 친구들을 만나고 형제적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 교회는 다른 형제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하나의 가정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의 모임은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교회가 복음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복음).

 
 
 
 

듣기 좋은 소리보다 사랑이 먼저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넓고 높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으로 바른 충고를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저는 강론 시작에 앞서 항상 ‘사랑합니다’ 하고 말문을 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입니다. 가끔은 ‘하늘만큼, 땅만큼’‘사랑합니다’를 합니다. 한번해볼까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땅만큼. 하늘만큼. 예 ,좋습니다. 우리 서로 서로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2독서 로마서에서 사도바오로는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13,8) 라고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참으로 연약함을 지녔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너무너무 기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면 똑 같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에게! 이것밖에 안 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것에 젖어있으니까 좋은 줄을 몰라요. 그래서 인사를 바꿔야 하겠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땅도 알고, 하늘도 알고!’

즉 하늘도 알고 있을 만큼, 땅도 알고 있을 만큼 사랑해!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거든 하늘 앞에, 땅 앞에 부끄럼 없이 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은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 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18,1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충고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칭찬은 달디 달지만 충고는 한없이 쓰니 섣불리 쓴 약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도 알만큼 큰 사랑을 갖지 않은 이상 섣불리 충고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땅도 알만큼 큰 사랑이 없는 한 칭찬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칭찬은 그로 하여금 칭찬의 노예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달지만 독이 되기 쉽고, 충고는 쓰지만 약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찬과 충고를 하기에 앞서 주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충만케 해야 하겠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충고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충고해서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부터 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좋은 충고를 받아들여 현명하게 판단하고 수행하십시오. 충고는 하느님의 소리요, 하느님의 뜻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미련한 자는 제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이는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어리석은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인다.)(잠언12,15)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고를 할 수 있는 큰 사랑과 온유함을 간직해야 하며 동시에 충고를 하느님의 소리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함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묵시3,19).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 하신다.”(히브12,5)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소리로, 하느님의 뜻으로 다가올 충고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소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큰 은총입니다. 한 주간 바른 충고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도록 기도하고 듣기 좋은 소리보다 바른 말에 귀 기울이시길 희망합니다. 사실, 충고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충고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더욱 경시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효과 있고 살아있는 충고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을 기억해 봅니다. 주인공 장발장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빵 한 조각을 훔쳐 먹습니다. 이 빵 한 조각 때문에 19년간 중 노동을 선고받은 장발장은 출소한 후 길을 헤매다가 한 신부님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성당에서 묵게 됩니다. 신부님은 장발장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먹을 것을 주며 위로 합니다. 장발장은 처음 받는 인간적인 대접에 감격합니다. 그러나 신부가 잠든 사이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은촛대를 집어 들고 도망칩니다. 잠시 후 경찰에 붙잡힌 장발장은 성당으로 끌려옵니다. “신부님, 혹시 은촛대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이 사람이 성당에서 훔친 것 같아 잡아왔습니다.” 말없이 장발장을 바라보던 신부님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그 촛대는 제가 이 사람에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 날 이 후 장발장은 변했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훗날 이웃의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시장까지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자녀, 친구,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도 정곡을 찌르는 논리 정연한 설득과 충고가 아니라 진심어린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타일러라’는 말씀은 남의 잘못을 지적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이웃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배려하여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남에게 충고는 잘하면서 남의 충고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약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한계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무엘 하권 12장을 보면 나탄이 다윗을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탄은 다윗을 찾아와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매우 많았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 새끼 양을 제 자식과 함께 키우며 한 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같은 잔으로 마시고 잘 때는 친 딸이나 다를 바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소나 양은 잡기가 아까워서 그 가난한 집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탄에게 소리쳤습니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 없다. 그 양 한 마리를 네 배로 갚게 하리라.”

 

그 때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습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윗은“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고 주님께서 내리시는 시련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 결국 죄의 씨인 다윗의 아들이 죽고 밧 세바가 아들을 낳게 되는 데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습니다.

 

누구나 잘못을 범하여 하느님 눈 밖에 날 수 있으나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죄를 고백하면 그분의 크신 자비가 새 삶을 살도록 안배하십니다. 예언자 나탄의 소리를 귀여겨들었던 다윗처럼 우리도 쓴 소리를 귀여겨들을 줄 알고 하느님의 자비에 나를 온전히 맡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더 큰 은총이 우리를 감싸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많이 사랑하고 나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말며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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