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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밖엔 길이 없다 - 9.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4 조회수34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1.9.4 연중 제23주일

에제33,7-9 로마13,8-10 마태18,15-20

 

 

 

 

 

사랑밖엔 길이 없다

 

 

 

평생 공부가 사랑입니다. 오늘은 ‘사랑’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감사하게도 제 수도서원 25주년 은경축에 맞춰 나온 신간인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의 책 제목을

모두가 참 좋은 제목이라 공감하며 감탄합니다.

정말 살아가면서 사랑밖엔 길이 없음을 실감합니다.

 

사랑-삶-사람에서 보다 시피 사랑에서 삶과 사랑이 나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라틴어 어원을 살펴봐도 유익합니다.

흙(humus)에서 유래하는 겸손(humilitas)이요 사람(homo)이니

결국은 흙같이 겸손해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합하여 겸손한 사랑의 사람이 하느님을 닮은 온전한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길을 통해서 하느님께 이르고 사랑이 깊어지면서 하느님을 닮습니다.

 

요즘 밭에 모종한 가을 김장을 위한 아기 배추들이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 물을 주면 싱싱하게 깨어 살아났다가

한낮 뙤약볕에는 죽은 듯이 땅에 넘어져 있습니다.

이런 시련을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뿌리 내리겠습니다만

저는 여기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묵상했습니다.

 

물 같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물이 주어질 때 살아나는 뙤약볕 아래 배추 모종들처럼

사랑의 은총이 주어질 때 시들어 죽어 가던 영혼들도 살아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시들어 가던 우리 영혼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깨어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사랑은 배움이자 깨달음입니다.

 

배워야 하는 사랑이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사랑입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공부가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늘 초보자 일 수뿐이 없고,

항구한 인내로 평생 사랑을 배워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스승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빚쟁이입니다.

사랑의 빚은 질수록 좋고 줄수록 좋습니다.

이런 이들이 역설적으로 진정한 부자입니다.

 

하느님께 물, 공기, 햇빛, 땅, 시간의 선물을

공짜로 받아 사용하고 있는 하느님 사랑의 빚쟁이들인 우리들입니다.

이 사랑의 빚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온통 하느님의 ‘사랑 빚 덩어리’, ‘은총 덩어리’인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로 사랑 빚을 갚는 우리들입니다.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말로 요약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부단히 배워 가면서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정화하고 확장해 가는 것,

이게 우리의 평생 과제입니다.

 

결국은 모두가 내 사랑 부족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러야 배움의 완성입니다.

사랑의 깨달음이 우리를 치유하고 변화시켜 자유롭게 합니다.

 

이런 사랑의 깨달음을 통한 내적성장 있어 참 나의 실현입니다.

치유하는 사랑, 집착 없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고,

평생 사랑의 스승이신 주님으로부터 이런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자존감 높은 참 나의 실현은 사랑의 성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분별이자 교정입니다.

사랑이라고 다 좋은 사랑이 아니라 분별없는 맹목적 사랑도 있습니다.

이기적 집착의 눈 먼 사랑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듯 사랑의 요구도 다 다릅니다.

내 식대로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에 응하는 사랑, 때를 알고 기다리는

지혜로운 분별의 사랑입니다.

 

사심이나 사감이 없는 공정한 분별의 사랑에서 교정도 가능합니다.

아주 예전에 장상으로부터 들은

‘교정이 없는 공동체’는 약한 공동체라는 말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칭찬의 말은 해 주기도 좋고 쉽습니다만

부정적인 교정의 말은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말하게 힘든 게 현실입니다.

많은 이들이 각박한 삶에 마음이 약해져 있어

상처 받기 쉽고 충고와 조언보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 하니

교정의 말은 참 하기 힘듭니다.

 

이러다 보면 허약한 공동체들이 되기 마련이며

이런 공동체들 즐비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사랑은 교정입니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교정을 위한 충고와 조언이요

사심 없는 사랑 있어 가능합니다.

예수님 역시 절차를 밟아가며 분별 있게 형제를 교정하라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잘못한 형제들을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이들에 대한 최선을 다해 교정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역시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이스라엘 공동체에 교정의 노력을 기울이라 말씀하십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에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경고하지 않았을 때 예언자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는 준엄한 말씀이 뒤따릅니다.

우리 역시 때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침묵의 방조와 책임 회피의 죄로 주님의 엄중한 추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기도이자 공동체입니다.

 

사랑은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사랑이 메마른 자들입니다.

사랑의 기도가 하느님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이웃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합니다.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소통이, 형제들과의 소통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사랑의 완성, 소통의 완성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고 합니다.

사랑은 공동체를, 기도하는 공동체를 찾습니다.

함께 기도해야 너도 살고 나도 삽니다.

 

공동체와 유리된 기도는 항구하기 힘들고,

공동체와 유리된 믿음 역시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공동체가 한 마음 되어 기도할 때 하늘과 땅은 하나로 연결되고

모든 기도는 다 이루어진다는 주님의 확약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한 마음으로 바치는 공동기도의 위력을 말해 줍니다.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제 뜻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뜻에 맞는 기도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주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도 함께 계시기에 응답되는 공동기도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이르고 이웃에 이릅니다.

 

사랑은 배움이요 깨달음입니다.

평생 인내의 배움이요, 사랑의 깨달음과 더불어 치유와 자유입니다.

 

사랑은 분별이자 교정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눈 밝은 분별의 사랑이자

공동체를 견고히 하는 교정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기도요 공동체입니다.

사랑에서 샘솟는 기도요 끊임없이 함께 바치는 사랑의 기도가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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