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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05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5 조회수30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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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는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그 불편함이 극복되지 않는 한 평생을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통 이외에 덧붙여 받게 되는 굴레가 못지 않게 무겁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 서서 예상치 않은 평가와 대접과 처분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마디도 해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 때마다 이들은 천사로 포장되었다가도 사회적 짐으로 변하기 일쑤이고 선행의 대상이 되어 누군가의 선함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이기적인 폭력에 말못하는 희생자가 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안식일에 대한 논쟁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고 사람들은 안식일이 도대체 어떤 뜻이냐에 대해 결론의 몫을 차지하게 되겠지만 복음 속에 등장하는 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처지를 살피는 일이 안식일 뜻을 바로 헤아리는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오른손 중심의 세상에서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불편함보다 오른손이라는 것이 그의 치명적 단점이 됩니다. 신체적인 결점이 사회적인 치명상이 되어버린 사람. 그런데 그가 오늘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선 것이 더 큰 잘못이 되어 버립니다. 졸지에 오늘 복음에 놀이감이 된 사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몸이 불편한 이가 회당에 들어서 있는 것 자체는 사랑과 능력의 하느님 안에 삶의 부족함과 불편함을 지닌 이가 그 사랑을 청할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은 셈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이의 등장에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하느님 앞에 선 이 약한 사람을 자신들이 노리는 한 사람의 처벌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이들의 시선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잔인하고 악한 모습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 서 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는 수단이 되었고, 그의 불편함은 하느님을 죽이는 미끼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더 깊은 악함이 드러납니다. 

그를 예수님이 도와주시면 예수님은 고발을 당하십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사람을 도와줄수도 없는 날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사람을 모든 이들 가운데로 불러 세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이 사람을 노려보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언제고 사람을 도와주는 것과 좋은 일을 하는 것은 하느님 뜻에 합당한 일입니다. 스스로 선함을 실행하지 않는 이들도 모두 아는 이 단순한 진리가 하느님이 정하신 안식일에 멈추어 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질문을 받은 이들은 안식일에 좋은일도 살리는 일도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믿어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마음 속으로 선한 일을 하려는 이와 도움을 받아야 할 이를 고발할 마음과 보복할 마음으로 지켜보는 해치는 마음과 죽이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 속의 예수님은 아주 간단히 이 일을 마무리 지으십니다. 



“손을 뻗어라.” 



그리고 일의 결과는 병이 있는 이는 낳았고, 그를 지켜보던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시작합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시고 죄를 지으셨다 판단되셨고, 그는 안식일에 병을 낳고 악한 이의 죄에 물든 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을 노리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한 사람을 죄인으로 내몰고 그 은혜를 받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위협하려는 잔인한 의인이 되어 버립니다. 


복음 속에 단 한 차례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이 아픈 사람에게 이 안식일은 도대체 어떻게 기억될까요? 그에게 도움을 준 이를 증언하면 그는 죽음을 당할테고 덩달아 자신 조차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병이 낳은 여전히 불구의 몸으로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 그날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어울려 사는 날입니다. 그 어울림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랑의 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짐이 되고 죄가 되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하기 위해 힘 없고 말 못하는 이들을 멋대로 판단하고 표현하며 좌지우지 하는 이들의 모습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식일에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이들이 다른 날 그들을 도와줄 수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도와주십니다. 그 날의 주인이 그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신 셈입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이는 그의 오른손을 펴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사는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안식일에 선행을 하시고 위험에 처하신 예수님을 보여주지만 사실 복음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살인자가 되려 마음을 품고 행동을 시작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지만 하느님의 날 하느님 앞에서 드러난 자신들의 진실을 모르는 이들의 모습은 잔인하기만 합니다. 


복음에서 사라진 손이 오그라든 이의 치유가 그의 평생의 삶을 되돌려 놓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는 처음부터 온전한 생명이요 삶이었으니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통스런 인생이 그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합니다. 더는 그가 다른 이에게 이런 희생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한 지금도 어느 성당, 어느 집,  어느 시설에서 존재 만으로 이렇게 희생당하는 이들의 인격도 존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다툼이나 싸움의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짐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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