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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0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6 조회수32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9월 6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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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밤을 새는 예수님의 고심 끝에 사도 열 둘이 탄생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수한 제자들 속에 그들이 선택된 이유는 어딜 찾아봐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짐작으로도 헤아리기가 힘듭니다. 밤을 새는 수고 끝에 얻은 결론이니 분명 그들에겐 주님의 일을 수행할 이유들이 있을테지만 주님이 그 기준과 이유를 밝혀주시지 않으시기에 우리가 그 잣대를 헤아려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사도 열 두분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알고 있으나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열 두 사도의 탄생. 지금 사도의 뒤를 이은 주교와 주교의 일을 사명으로 받아 수행하는 수많은 성직자들의 탄생이 그렇듯 우리와 같은 이들 중에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경사스런 일입니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이 선택 하나가 그 대상자에게 붙여주는 호칭부터 대접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응답하고 선발되고 성직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사람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도 존경을 가슴에 품고, 그의 권위에 어떤 식으로든 순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또한 교회법은 그것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습니다. 독재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구조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그 권위가 하느님으로 부터 나오고 그 권위의 내용이 하느님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독재"라는 엄청난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하지만 신앙이 아닌 눈으로 보는 구조는 분명 엄청난 격차로 벌어져 있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이들 사도들이 예수님의 선택을 받고 취한 다음 행동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있습니다. 산 위에서 밤새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뜻대로 뽑은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평지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이 지내는 곳을 구분하는 단어가 평지입니다. 사도로 뽑힌 사람들은 마치 하늘나라에 이미 들어간 사람처럼 여겨지는데 주님은 그들과 함께 산을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평지에 벌어진 일들을 봅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평지에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과 온 지방에서 몰려온 아프고 약한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과 주님의 치유를 바라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사도라는 말은 사명을 받아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내려선 평지에서 그들 앞에 펼쳐진 이들에게 내미는 주님의 말씀과 손길이 그들이 받들어야 하는 사명이 됩니다. 사람들을 떠나서는 이 사명은 존재하지 않고 예수님 또한 아버지의 뜻을 이들에게 입을 열어 말씀하시고, 손을 뻗어 고쳐주시며 수행하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주님 앞에 모여든 이들이 그 사명을 말해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선택은 그들에게 내용 없는 권위를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 사명을 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들의 사명이요, 사람들의 그 목마름 앞에 하느님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능력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도의 자리에 서 있는 이들에게 신자들은 그들이 가진 조그만 재능과 조그만 희생에도 하느님이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를 붙여주곤 합니다. 심지어 사람이 어떤 면으로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단 한가지 이유로도 하느님 선택에 감사하고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말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높은 산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하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복음 속의 모습은 아닙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점점 더 벌어지는 모습이어서 오늘 복음의 사도들과는 너무도 달라 보입니다. 


선택을 받고 그들은 주님과 함께 평지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말하고, 그들을 붙잡아 일으켜 주고 삶을 바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치고, 그들 중 힘겨운 삶을 사는 이들을 고쳐주고 도와주며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 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이 그리스도가 한 일이며 사도들이 배운 바 내용입니다. 


그 일을 위해 그들은 뽑혔으며 그래서 누군지도 구별할 수 없는 평범한 이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봉사하도록 불림을 받은 것이 열 두 사도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봐도 구별할 수 있는 옷을 입고, 누가 봐도 거룩할 수밖에 없는 제단에 올라,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도록 살아가는 우리의 사도들은 산에서 내려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산 위에서 허공에 울려퍼져야 하지 않고 사람들의 삶 속에 떨림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산 위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민 손에도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야 합니다. 


알 수도 없는 선택을 강조하기 보다 선택의 이유에 합당한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고민은 그래서 좀 더 낳은 사람을 뽑는 것에 골몰하고 있지만 사람에 좀 더 가까운 삶을 살도록 사명을 깨닫게 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평지에는 귀를 열고 손을 내민 사람들이 가득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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