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월 8일 목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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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9-08 | 조회수993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9월 8일 목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마태오 1장 1-23절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자신의 삶에 지속적으로 Yes>
세파에 시달리고 찌들리다가도 ‘아차!’하며 다시금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막 수도생활을 시작한 ‘애기 수녀님’들을 만날 때입니다. 그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혼탁해진 영혼이 잠시나마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뭐가 그리들 좋은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반응도 없을 ‘썰렁한’ 개그 한 마디에도 다들 깔깔대고 난리들입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들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들의 삶을 한번 보십시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때 안쓰럽고 ‘짠’하기 그지없습니다. 입회와 동시에 요즘 초딩들은 물론이고 강아지들도 목에 걸고 다닌다는 그 흔한 휴대폰조차도 압수입니다. 가끔씩 관공서에 가서 무슨 서류라도 작성할라치면 창구 직원이 “휴대폰 번호는요?”하고 물으면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면 희귀동물이라도 만난 듯 바라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필수인 노트북, 디카, 스마트폰 엄두조차 못 냅니다. 본격적인 수련기에 접어들면 이메일, 전화조차도 윗선의 허락을 득해야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나, 과연 무슨 재미로 사나, 하시겠지만 당사자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다들 행복하답니다. 그런 걸 보면 행복, 불행의 잣대는 돈이나 물질이 결코 아님이 확실합니다.
세상도 좋지만 하느님 안에 푹 잠겨 사는 것, 세상의 양식도 좋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먹으며 사는 것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애기 수녀님’들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애기 수녀님’들이 신이 났습니다. 뭔가 잘해서, 원장 수녀님 마음에 들어서, 'Sorpresa'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태리 말인데, ‘깜짝 이벤트’, ‘뜻밖의 선물’이 준비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저는 대단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2박 3일 제주도 여행 정도는 아니라도 하루 소풍, 그게 아니면 한 사람당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에 생맥주 한 잔, 그 정도는 돼줘야 ‘깜짝 이벤트’ ‘뜻밖의 선물’인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뜻밖의 선물은 오후 산보, 아니면 집에서 액정 쏴서 좋은 영화 한 편 관람, 비오는 날 김치전 해먹기, 겨우 이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애기 수녀님들 좋아서 난리 났습니다. ‘애기 수녀님’들 바라보며 행복의 비결은 단순함, 소박함, 가난함, 겸손함에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덕들은 바로 오늘 탄생 축일을 맞이하신 성모님의 덕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 탄생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신앙 여정, 하나하나 짚어나가 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의 잉태 이후 성모님은 당혹해하는 부모와 맞서야 했고, 남감해하는 약혼자 요셉과 맞서야 했고, 따가운 이웃들의 시선과 맞서야 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성모님께서는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자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뿐입니까? 정녕 있을 수 없는 마굿간 탄생, 헤로데 박해를 피하기 위한 이집트로의 피신, 때로 이해하기 힘든 아들 예수님의 돌출 발언, 결국 아들 예수님의 출가, 그리고 들려오는 좋지 않은 소식들, 결국 십자가 죽음... 정녕 성모님의 한평생은 길고도 험난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우리에 앞서 때로 힘들고, 때로 외롭고, 때로 시련 투성이의 가시밭길을 용감히 걸어가셨습니다. 때로 밀려오는 외로움에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때로 가야할 길이 너무나 아득해 주저앉고만 싶었습니다. 때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온 몸으로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모님은 기다림의 달인, 견뎌냄의 달인이셨습니다. 희망의 달인, 믿음의 달인이셨습니다. 철저하게도 ‘Yes woman'이셨습니다. 그 바탕에는 다름 아닌 단순함, 소박함, 가난함, 겸손함의 덕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 앞으로 닥쳐오는 비관적인 상황 앞에서도 성모님은 단 한번도 No라고 하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Yes라고 외치셨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지속적으로 Yes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은 거룩한 생명의 잔, 하느님의 거처인 지성소가 되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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