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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받는 부담감 극복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8 조회수586 추천수9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 받는 부담감 극복법

 

 

보통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는 것이 더 어렵고 받는 것은 쉽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몇 년 전 성탄 자정미사가 끝나고 중고등부 복사 아이들에게 집에 돌아가다가 떡볶이 사 먹으라고 돈을 좀 주었습니다. 그 때는 그 돈을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미사에 그 아이들은 그 돈을 다시 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너무 액수가 커서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액수가 부담스러운 액수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잘 줄줄도 아는 것이라며 돌려주어서 보냈습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을 좋아하지 관계 맺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은 부담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받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이란 그것을 주는 사람에게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준 사람을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 깊어짐을 의미합니다. 개도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주인을 좋아하고 더 따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받는 것들이 부담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계의 깊이는 주고받는 양의 정도와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녀의 결혼 축의금으로 천만 원을 넣었다면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는 관계가 가까운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통장을 지니고 각자가 벌어서 각자가 쓰면서 산다면 그 부부가 그리 가까워 보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인간도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듣다보면 오랫동안 냉담했던 분들은 자기가 죄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겸손한 마음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아직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용서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서를 받으면 용서를 해 주시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데 그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사실 죄는 인간의 이런 마음을 이용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다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실 수 있을 때 온전한 관계를 회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할 것을 아셨고 그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아들을 보낼 계획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인 인간 중에 하느님의 선물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원죄를 지닌 인간은 누구도 하느님 자신의 모든 것을 받는 부담감을 이겨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고 그 죄 때문에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분과 한 몸이 됨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이미 아담과 하와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성자만 준비시켰던 것이 아니라 성자를 온전히 받아들일만한 인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리아를 미리 마련하여 죄에 물들지 않도록 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아담과 하와 이전에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이 만약 그들의 후손이 된다면 성자께서도 마리아를 통해 그들의 원죄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육체와 함께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됩니다. 마리아는 아드님께 깨끗한 육체를 봉헌하기 위해서라도 실제로는 아담과 하와를 앞서야합니다.

아기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남자나 여자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되고 둘이 함께 해야 하는 것처럼 구원도 성자 혼자서는 이루어 낼 수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가 하나인 것처럼, 구원도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합작품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원죄 없으신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성자께서 순결은 육체를 지닌 인간이 되실 수 없으셨고 그랬다면 온전한 보속이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자의 인간이 되심은 많은 여인들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마련되어 있었던 마리아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오직 마리아만이 그 깨끗함으로 하느님의 전부인 성령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그 자율적인 받아들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리아의 탄생 자체가 구원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보아도 됩니다. 사람들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주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마리아의 전구가 없었다면 포도주는 그들에게 공급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도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합작품이지만, 그리스도의 탄생도 하느님과 마리아의 합작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떻게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이미 인간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들을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줄 줄 아는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고 잘 받을 줄도 아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담감을 하느님을 온전히 세상에 내어줄 수 있는 사랑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느님과 한 몸이고, 또 당신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들과 하나가 되십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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