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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체념이 아니라, 내 맡김은 적극적 행위이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0 조회수384 추천수2 반대(0) 신고

체념이 아니라, 내 맡김은 적극적 행위이다.

그리스도교적 내맡김은
소극적 인내도, 맹목적 복종도 아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적극적 수용으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두 손으로 받아들여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지탱되는 능동적 자세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적 귀의는 맥없는 체념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

곧 당신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하느님 뜻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오직 기도하는 마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고통의 철저한 수용과
하느님의 일치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 고통까지 바꿀 수 있다.

그는 정복당하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강해진다.
마치 사랑이 늘 지게하나 더 강하게 만들어 주듯.

물론 고통을 변화시키는 수용 자세는
그리스도인에게 날 때부터 저절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 자세를 지니기 위한 처절한 싸움과 비탄과
탄원을 통해 비로소 주어진다.

이 그리스도교적 위탁은 기도의 열매이지만
멀고먼 길의 마지막에 가서야 주어진다.

고통의 막장에 다다른 그리스도인,
그 또한 눈물을 흘리고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비탄 속에서 하느님께 반항할지도 모르나
이러한 가운데에서 기도는 우러나오고,
이 기도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이 된다.

무릇 인간은 기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느끼고 감지하는지 알게 되고,
이 모두를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고통을 부끄럽게 여겨 감추고 도망치며
고통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일차원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기도는 무언가를 부숴버리는 힘 있는 행위다.

참으로 힘 있는 기도는
현실에 안주할 수없는 이가 “생명을 사랑하시는”(지혜11,26)
하느님께 비탄과 눈물로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침묵의 언어.
하느님의 사랑은 침묵 속에 있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들 합니다.
이 때에도 바로 침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응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영적인 침묵으로
나를 감싸주시는 빛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들은 침묵을 통하여
더 깊은 영성의 빛을 바라보아야 한다.

침묵에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육신의 침묵, 곧 감각의 침묵입니다.

둘째, 정신의 침묵, 곧 마음의 침묵입니다.

침묵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침묵은 어두운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은 하되
인간적인 양심에서 솟아나는 한 줄기의 빛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침묵을 사랑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언어는 바로 침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 기적을, 능력을, 힘을 보여 달라고
청하였으나 오로지 침묵으로 대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침묵은 우리에게 빛으로 대답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이 빛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침묵 속에서 내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 ‘필연적 고통의 일’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침묵 속에서 보내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우려 주님의 이끄심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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