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방문을 마치고 로마에 돌아오신 총장, 부총장 신부님, 그리고 동료 신부님과 함께 나폴리에 갔다.
기차에서 막 내려 민박할 집을 찾아 길을 걸어가는데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예쁘게 치장한 개들을 보고 총장신부님이 "에고, 이 놈들은 호강인지 고생인지 모르겠다' 하셨다.
지난 번 로마에 있을 때 가이드가 어설프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던 터라서 '만회할 기회가 왔구나' 생각하고 이탈리아의 개에 대해 약 5분 정도를 설명해 드렸다.
"이탈리아 개들은 얼마나 순한지 공격성이 전혀 없어서 개들끼리 길에서 만나도 서로 눈길을 주고 받을 뿐 으르렁대는 것도 없고 좁은 길에서는 한마리가 지나간 다음에 다른 한마리는 기다렸다가 지나가고......"
"음... 또 이탈리아 개들은 사람들과 항상 함께 살고, 먹고, 자고 또 산책까지도 함께 다니기 때문에 그런지 전혀 짖지를 않아요. 제가 넉달 동안 사는 동안 한번도 개 짖는 소리를 못들어봤다니까요. 신기하죠? 허허허......"
그런데 그 마지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우리 앞에 있던 녹색 옷을 입은 개 한마리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그리고 나를 무안하게 만들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짖어대기 시작했다.
총장 신부님은 나를 쳐다보시며 '이건 뭘까?' 하는 눈빛으로 기가 막혀서 웃고 나는 그 개를 쳐다보며 '진짜 넌 뭐냐?' 하며 무안해서 웃고......
정말 부끄러운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이다.
정말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아는 척'의 연기를 해가며 정작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무척이나 무관심하다.
'아는 척'이라는 연기가 경지에 오르다보면 나중에는 나 스스로도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아는 조그마한 지식하나가 진리에 대한 깨달음내지는 그에 대한 열망을 방해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많이 아는 사람은(많이 아는 체 하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것을 모른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 하느님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하느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앎의 대상이기보다는 체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신자분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사제들에게 묻곤 한다. 어떤 사제들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언어에 갇히는 그 순간, 우리들의 지식에 갇히는 그 순간 하느님은 이미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들 삶 전체를 통틀어 몸과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대상이지 결코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어떤 분'이 아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넉달을 지내면서 '이탈리아 개들은 도대체 짖지를 않는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모든 이탈리아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나는 이탈리아 개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진리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진리를 따라 한 생을 살다 가고 싶을 뿐이다.
나는 모른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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