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 고통의 언어
그리스도인도 헤어날 길 없는 고통 속에서는
울 수 있고 불안해할 수 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께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앞두고 주저하며 떠셨다.
불안과 슬픔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탄식은 고통의 언어다.
탄식이나 왜라는 울부짖음마저 억제된다면
사람은 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시편22,2)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앞두고 절규하신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느님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고통과 맞설 때 우리는 하느님께 울며 탄식하고
의문을 던질 뿐 아니라 고통에서 구해 주십사 간청하고
또 애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두려움에 떨며
세 번씩이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14,36)
예수님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후반부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모든 고통 속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어려움을 없애 달라는 모든 간청의 기도는
이 후반부 단계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잠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돌아온 예수님은
기도하러 갈 때와 사뭇 달랐다.
더 이상 탄식하거나 떨지 않았고
자신의 때를 향해 용감히 나아가셨다.
“이제 되었다. … 일어나 가자.”(마르14,41-42)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하여 노력하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또한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섭리에 속하는 것을 영적인
기도를 통하여 이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역할 분담인 것입니다. 즉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
하면서 그에 따르는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신뢰하여야 할 때에는 하느님을 신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안해하며 온갖 걱정을 하면서 그날그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걱정과 불안 뒤에는
우리가 그처럼 원하는 참 사랑과 기쁨이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언제나 바로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열정과 열의를 갖고 실행하게 하시어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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