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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빵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께서 주시다 [은총 작용]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5 조회수347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모님의 순종은 은총의 결과입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에서 마리아는 이미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다음을 보십시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에서 성모님께 은총이 가득한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을 또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하고 천사는 말합니다.
마리아께 가득한 은총은 마리아께 있는 하나의 독립된 은총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은총(주님께서 함께 계심 / 총애)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참조>
 
'가짜 마리아'를 언어로 만드는 유혹이 왔으니 탕녀의(에 관한) 교설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명구원을 위해 아드님을 '내어 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생생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으로 본다면 죽음의 병에 걸린 자식을 위해 대신 부모가 자기 목숨을 '내어 주고' 자식의 생명을 살리는 사랑이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아버지의 사랑)으로 보십시오. 죽음의 병에 걸린 인간(자식)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아버지(하느님)께서는 당신과 같으신 아드님의 목숨을 '내어 주시며' 인간(자식)의 생명을 살리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말로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으셔야 했던 성부 아버지와 성자 아드님을 우린 똑똑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아버지의 사랑과 '고통 때문에 사랑을 받는' 어머니의 사랑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게세마니 동산에서 고통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내어 주시는'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어머니(성모님)는 십자가에서 받는 예수님의 고통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이 사랑'은 아버지께서 오며 어머니께서 '이 사랑'을 받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받으실 때 아버지의 사랑(하느님의 사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에 일치하셨다는 말은 '아버지의 사랑'에 결합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미화되어 지면 악마의 속임수입니다. 고통은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에 일치하신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어집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그리스도적 고통 때문에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적 십자가 고통에 일치하면 '내어 주시는'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랑의 은총'을 주십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적 고통을 통해서 '생명의 사랑'을 배우게 하십니다. 왜, 생명의 사랑일까요. '이 사랑'은 하느님이신 아드님을 '내어 주신' 바로 '하느님의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참 양식(참된 빵)은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 요한1서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중재)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요한 복음서 6, 22> 이것이 진리(하느님의 말씀) 입니다.
 
'어머니께서 주시게 되었다'는 억지 논리(창세기 뱀이 이와같은 논리)를 펴는 교설의 터무니 없는 거짓말은 그 안에서 악마가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거짓말 속에는 악마가 활동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참조)고 가르칩니다. 
 
어머니께서 참 양식을 잉태하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에 눈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진리에 불순종하게 되어 온갖 거짓을 믿게 되어집니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밝혀 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내어 주시는'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십자가 예수님을 어머니의 품 속으로 안으십니다. 마리아의 고통 때문에 사랑이 오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미화(고통의 사랑)하면서 진리를 속이려 하는 말은 죄악입니다. 어머니는 '그리스도의 신비' (사랑의 고통)에 일치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기억하며 교할한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인간으로 보더라도 잉태가 먼저 일까요, 아니면 출산이 먼저 일까요. 마리아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주님의 은총 없이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 입니다. 참된 빵의 잉태도 '아버지의 사랑' 입니다. 고통의 마리아는 십자가의 예수님을,아버지의 '내어 주신' 사랑어머니 품 속으로 안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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