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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1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6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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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일행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모습에서 우리가 드물게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고을과 마을을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행에 열두 제자가 동행했음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몇 몇 여인들이 보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수산나 등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예수님 때문에 낫게 된 여인들로 소개되는 이들이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했던 역할이 글의 끝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전에 찾아보기 힘든 이 한 줄의 글이 마음을 조금 산란하게 합니다. 현장에서 가끔은 돈이 있어야 사목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또한 마음이 아무리 좋아도 돈이 없어서 선행도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결국 무엇인가 손에 쥔 것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런 점에 예외가 아니라고 이 구절을 인용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복음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 소위 "예루살렘 부인들"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을 예수님 수난의 길에 슬퍼하다 예수님의 위로를 받는 이들이지만 이상하게 오늘 복음의 여인들과 겹쳐지면서 소리없이 사목활동에 밑거름이 되어주는 사람들처럼 불리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내용은 예수님의 활동에 돈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일행에 함께 했던 여인들을 설명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들의 행동이 예수님 일행의 필요에 의해 함께 다닌 것인지 아니면 복음 내용처럼 자신들의 치유에 대한 감사로 자발적인 동행이 되었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게 하시고 사명을 주셨던 사도들과 달리 예수님을 찾아 나서고 그분 곁을 함께 지켰던 제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아주 많았던 것을 보면 예수님이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동체를 만든 것이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일행에 이 여인들의 재산을 두고 의미를 필요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의 가치로 바꾸어 재산은 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삶을 사는데 이 돈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아무리 풍족한 곳에서도 돈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이 현대사회입니다. 그래서 사목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별 이상하지 않게 들리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모든 이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마다의 재산을 나누고 있습니다. 교회를 지탱하는 교무금과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데 사용되는 모든 봉헌금들이 사목의 기반이 되고 있어서 그 외의 것은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필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는 몫으로 교회를 단단히 결속시켜야 하고 그것의 나눔을 통해 교회의 역할을 알려야 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없으면 없는 것으로 모든 것에 헌신해야 하고 더 필요하다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아닌 상황과 현실을 함께 느끼며 생겨나는 고민과 반성이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모든 일들이 여인들이 내미는 재산들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점점 공적으로는 감사헌금이라는 것이 늘어나고, 사적으로는 사목이란 이름으로 연결된 인간관계가 보이지 않게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입에 올리는 것이 드물 뿐 지금의 현실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자발적이라는 것 또한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발적이라는 것을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데 부족함을 채우는 것으로 설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하느님은 은총을 주시고 우리는 감사로 갚는다는 식의 거래 관계나 채무관계로 신앙생활이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그 정성들을 온전히 하느님의 일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좀 처럼 찾기 힘든 내용, 그러나 스쳐지나갈만한 이 짧은 구절 하나가 때로는 신앙생활에 혼선을 가져올 수도 있고, 우리를 유혹에 빠뜨릴 수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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