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나 혼자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란 썩 유쾌한 일이 못된다. 그러다보니언젠가 부터 아침은 커피에 적셔 먹는 식빵으로 때우고, 저녁은 어떻게든 집근처 식당에서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집에서는 점심 한 끼를 먹게 되는데 메뉴는 그 날, 그 날 영감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으로 결정을 하는 편이다.
며칠 전에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집에서 좀 떨어진 슈퍼마켓까지 가서 김치를 사왔다. 이제는 이곳 스자좡에 사는 중국 분들에게까지 김치가 알려진 탓인지 빨간 색깔만큼은 영락없이 한국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김치를 그 슈퍼마켓에 가면 살 수 있다. 물론 매운 맛보다는 달짝지근한 맛이 너무 강한 이 곳 김치는 김치찌개 재료로나 적합할까 흰 쌀밥에 그냥 반찬으로 먹기에는 힘이 든다. 그래도 이곳에서 김치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땀을 비 오듯이 쏟아가며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얼마나 배고픔이 느껴지던지 바퀴벌레라도 눈에 띄기만 하면 휘파람을 불면서 입 안으로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땀을 식힐 틈도 없이 냄비에 김치를 길쭉하게 찢어 넣고, 대파와 마늘도 송송송 썰어 넣고, 껍질까지 붙어 있는 돼지고기도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팔팔 끓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혼을 담아 빗은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일주일을 굽고 앉아있는 장인의 마음도 그리 조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최강표 김치찌개’가 완성이 됐고 나는 밥을 담기 위해 주걱을 들고 밥통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밥통에 밥이 없다! 쌀통에 쌀이 없다!
쌀이 떨어진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을 텐데 도대체 이놈의 주부가 살림을 어떻게 하기에 쌀통 채우는 일도 안하고 며칠을 보내고 있었을꼬.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바로 옆에 놓여 있는 빈 밥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 있을 때 드는 감정이 의외였다. 시장기는 다 어디로 도망가고 갑자기 파도처럼 내 가슴을 적시는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 그 동안 외로움이니, 고독이니 하는 감정을 주제로 글도 몇 편 써 봤고, 강론도 몇 차례 해 봤지만 그 빈 밥통 앞에 서서 느낀 외로움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인간 감정을 사진 찍듯 정확히 찍어놓은 광경 앞에서 나는 벌벌 떨고 있었다. 모든 재료가 다 들어가서 맛있게 끓고 있는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밥이 없는 김치찌개! 이게 외로움이구나! 일견 다 있어서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없어서 모든 것의 의미가 그 빈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버리는 것, 그래서 내 존재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가는 것, 이것이 외로움이었구나!
그 날 밤, 조용히 남의 말을 들어주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한 선배 신부님의 전화번호를 힘들게 알아내서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그 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익숙한 선교지를 떠나서 새로운 땅으로 가라는 주님의 명을 받고 이제 막 새로운 선교지에서의 삶을 시작한 분이었다.
다시 물설고 낯선 새로운 환경에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되어 그곳 사람들과 그곳 교회에 적응해 가야하는 쉽지 않은 상황에 본인이 서 있음에도 그 분은 언제나처럼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안다는 옛말이 틀림이 없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그 분의 깊은 침묵 속의 마지막 한 마디가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울림으로 내 마음을 채웠다. “최 신부! 나도 요즘 몹시 외롭다.” 생전에 그런 표현은 단 한 번도 안 할 것만 같았던 그 선배 신부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무척 외롭다’는 고백 한 마디에 나는 목이 메어왔다.
그래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 나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가 같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고 앉아 있다는 것은 놀랍도록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그 커다란 위로 안에서 나는 다시 나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맛있게 끓고 있는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주식이 빠진 밥상! 주님이 멀어진 선교지에서의 삶! 그것이 나의 외로움의 시작이었다. 밥이 없이 반찬만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없듯이 주님이 없이 활동만으로 한 선교사의 삶이 어찌 풍요로울 수 있을까. 하느님과의 대화 없이 어찌 친구들과의 수다만으로 한 구도자의 기도가 완성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선교지에서의 외로운 삶은 주님과의 풍요로운 관계 안에서만 매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활동과 사람만 그리워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깊은 외로움의 골짜기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 깊은 골짜기가 주님으로 채워짐이 없이 활동과 사람만으로 얕아질 수 있을까? 활동과 사람만으로 그 깊은 골짜기를 빠져나와 다시 풍요로운 땅을 걸을 수 있을까? 함께 미사를 드릴 신자 한 분이 없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빈 방에서도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온 피부로 섬세하게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시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거룩한 미사를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을 본 그 날 이후, 그 선배 신부님의 짧은 고백을 들은 그 날 이후, 나는 다시 모든 희망을 주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모든 주권을 주님에게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주님 때문에 기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주님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돛단배,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외롭지만 행복한 나그네! 나는 다시 오랜만에 주님께 편지를 쓴다.
“스승 예수님!
고백합니다. 그 동안 너무 외로웠습니다. 함께 미사를 드릴 신자 한 분이 없는 이곳에 살면서 ‘선교사제로 평생을 살겠다’고 당신께 드린 약속을 한 수만 물러달라고 때를 쓰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뜨는 달이 그렇게 외로워보여서 홀로 남겨두지 못하고 밤새 바라보며 창문 옆에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태양도, 바람도 외로웠습니다.
행여 일이 생기거나 친구가 생기면 좀 덜할까 싶어서 일에 빠져보기도, 친구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미사를 드리는 시간은 점점 힘든 시간으로 변해갔습니다. 정성은 눈곱만큼도 없이 그냥 빨리 ‘해치우는’ 식으로 바쳐졌습니다. 기도는 점점 저만의 독백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조차 외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 밥통을 보여주신 바로 그 날, 한 선배 사제의 낯선 고백을 들은 그 날, 스승께서 제게 빈 밥통과 낯은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었고, 지금도 그 놀라움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제 외로움의 시작과 끝을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제 외로움은 당신의 부재不在입니다.
당신의 부재는 제 외로움의 시작이고 제 생명의 끝입니다. 제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알고 계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스승님이십니다. 저는 다시 당신께로 돌아가서 당신과 함께 길을 걷습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고서야 비로소 다시 웃을 수 있습니다. 제 마음은 다시 평화입니다.”
“사랑하는 스테파노에게!
나도 몹시 외로웠단다. 광야를 걸을 때, 바라빠를 놓아주라고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를 때,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그리고 특별히 네가 외로워할 때도 나는 몹시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바로 뒤따르는 것이 깨달음이란다. 나는 외로움 속에도 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