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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현대의 순교는 선교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7 조회수675 추천수1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현대의 순교는 선교


 

순교자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아들이 최양업 신부님입니다. 수리치골 산속에 숨어살다 발각된 프란치스코는 그의 부인 이성례 마리아와 함께 심한 고문과 회유를 동시에 받습니다. 특히 이성례 마리아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투옥되어 더욱 고통이 컸습니다. 어린 젖먹이 스테파노는 고문으로 인하여 고름이 나오는 젖을 빨다가 아사하고 맙니다.

아기가 죽자 이성례 마리아는 신앙보다 남은 네 명의 아이들을 택하여 배교하고 풀려납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이성례 마리아가 최양업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져 다시 투옥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순교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성모님과 천주님을 잊지 말아라, 서로 화목하게 지내며 떨어지지 말고 맏형이 올 때까지 용인 큰아버지에게 가서 살아라.”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노끈으로 서로 칭칭 동여매고 구걸을 하며 어머니 옥 수발을 듭니다. 그들은 구걸한 음식들을 형리들에게 주어 어머니께 전달해달라고 합니다. 한 번은 시커멓게 된 잔치 떡 하나가 옥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서로 먹고 싶어 주물럭거리다가 결국 어머니께 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자 둘째 아들 야고보를 부릅니다.

“이제 내가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절대로 어미의 죽는 모습을 보지 말고 용인으로 가거라.”

당시 목을 칠 때에도 뭉툭한 칼로 다섯 번 이상 쳐서 목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단칼에 죽는 것도 큰 행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것을 알고 있기에 휘광이를 찾아가 동냥으로 모았던 돈과 쌀을 주며 죽을 때 아프지 않도록 어머니의 목을 한 칼에 잘라달라고 청합니다. 휘광이도 감동하여 밤새 칼을 갑니다.

다음 날 네 자식은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용산의 당고개 형장에 몰래 숨어들어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단 칼에 목이 잘리는 것을 보고는 아이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 옷을 하늘로 집어던지고 손뼉을 치며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엄마 목이 단칼에 떨어졌다! 이제 우리 엄마는 천당에 가셨다!”

 

만약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를 거부하고 배교를 했다면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는 살았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순교를 했기에 아이들은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두 번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육적으로 아이들을 낳았고, 영적으로는 어머니의 순교로 아이들을 다시 탄생시켜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탄생할 때도 항상 순교자들의 피를 필요로 했습니다. 고통과 피 흘림 없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들을 육체적으로 낳아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새롭게 태어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셨지만 불교집안으로 시집오셨습니다. 저희 조부모님과 고모님 때문에 성당에도 다니실 수 없으셨습니다. 불교 집안에서 살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으셨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만은 잃지 않고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고모님을 부르시지 않고 밭에서 일하고 계신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얘야, 내가 이제 죽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기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와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절 쪽에서 온 사람들 같지는 않다.”

이에 어머니는 그 분들은 하늘에서 온 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세례를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우물물을 떠서 마리아란 본명으로 대세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세 형제들도 성당에 보내시고 그 중 막내인 저는 사제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까지 세례를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온 가족이 새 생명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어머니께서 참아 받으셔야 했던 모든 고통들이 바로 ‘순교의 고통’인 것입니다. 순교의 고통은 산고의 고통이고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낳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당신의 부활하신 육체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보여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당신의 다섯 상처입니다. 그 상처를 통해 우리 교회가 새 생명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비뼈를 빼내어 하와를 만드십니다. 바오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서 그 분과 한 몸을 이룹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새 아담의 옆구리에서 빼낸 피와 물로 태어난 새로운 하와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듯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잠에 빠뜨리시고 그의 옆구리를 열어 죄를 씻어주는 피와 새로운 생명인 성령의 물을 빼내어 교회를 지으신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의인들은 흰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들의 옷을 빨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목마른 사람은 다 당신께 오라고 하시며 당신이 주실 생명의 물은 곧 성령님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분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은 ‘죄의 씻김과 성령님의 오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의 씻김과 성령님의 오심을 함께 일컬어 ‘성사’라 부릅니다. 세례성사 때도 죄가 씻겨지고 성령님이 오시며, 고해성사 때도 그렇고 성체성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이렇듯 우리의 신랑인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빼낸 피와 물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완전한 순교의 모델은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의미에서 ‘순교’는 ‘선교’와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태석 신부님은 당신 몸을 돌볼 여유도 없이 선교를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습이 현대의 가장 완전한 순교의 모습입니다. 꼭 남이 휘두르는 칼에 목이 떨어져야 순교가 아닙니다. 이웃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곧 순교요 선교인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순교는 사랑을 위해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그 생명을 받아들이면 순교와 선교가 사랑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웃에게 시원한 물 한 잔 주는 것도 곧 순교요 선교입니다. 결국 사랑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순교의 피 위에서 우리 교회가 탄생하였다면 우리도 매일의 작은 순교로 이웃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순교성월을 잘 보내는 유일한 길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으로 다가가서 새 생명의 물을 주고, 새 생명의 불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外>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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