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11) 미사의 준비
온 정성 다해 그리스도와의 만남 준비해야 “회중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여야 하며, ‘마음의 준비를 잘 갖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준비는 성령과 회중이 공동으로 하는 일이지만, 특히 집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은총은 신앙과 마음의 회개 그리고 성부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일깨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전례 거행 자체로 받게 되는 다른 은총들과, 그에 따라 차후에 나타날 결과인 새로운 생명의 열매를 받기 위한 전제가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98) 특별한 만남에는 언제나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어떤 의무나 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이라면 더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미사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난다. 식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하고 일상의 고된 삶 속에서 잃어버렸던 새로움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 만남을 어떻게 준비해왔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는 매일 새벽 5시에 봉헌되는 미사 준비를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곤 했다. 예수님께서 수난 받기 전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성인은 십자가의 제사인 미사 거행을 위해 무려 3시간 동안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했던 것이다. 동료 수사들이 농담어린 말로 이것이 너무 과하다고 지적할 때마다 그는 “거룩한 미사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지나침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듯이 그는 거룩한 미사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열망했던 것이다. 또한 미사를 드리면서 비오 신부는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면, 그는 “나는 미사를 드리기에 합당치 않는 사람입니다. 나야말로 가장 합당치 않은 사제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그토록 미사 준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그에게 미사는 수난과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과 만나는 가장 값진 은총의 순간이었다. 온 정성과 온 마음을 다해 미사를 준비하고 봉헌했던 이 겸손한 사제의 모습을 통해서 수많은 신자와 순례자들이 또한 미사의 은총을 체험했다. 성 비오 신부는 말했다. “세상은 해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 비오 신부의 미사에 관한 일화들은 때로 미사를 아무런 감흥 없이 습관적으로 드려왔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사제로서 합당한 준비 없이 주님의 거룩한 제단에 오르곤 했던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어떻게 미사를 준비할 것인가? 하느님의 말씀, 특히 미사에서 봉독될 복음과 독서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함으로써 일상 안에서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성찬례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내적 준비는 자연스럽게 미사 시작 전에 잠시라도 묵상과 침묵의 기도 시간을 갖거나 필요한 경우 고해성사를 통하여 화해를 이루도록 우리 모두를 이끌어 줄 것이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미사 준비에 있어서 집전자인 사제와 봉사자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사제는 미사를 준비할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하느님 백성의 영적 공동선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미사의 선택 부분들을 고를 때도 미사 거행 중에 특정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과 협의하고 또한 신자들에게 직접 관련되는 부분은 그들과도 협의해야 한다. 미사의 각 부분은 다양하게 선택될 수 있으므로, 미사 거행에 앞서 부제, 독서자, 시편 담당자, 선창자, 해설자, 성가대는 각자 자기와 관련된 부분에서 쓰이는 본문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결코 어떠한 것도 즉흥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352항) 여기서 말하는 준비란 마치 완벽한 공연이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미사에서 거행되는 신비에 신자들을 능동적으로 참여시키고 하느님의 행위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백성의 영적 공동선’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 이밖에도 새 「로마 미사 경본」은 사제가 미사 시작 전에 바칠 수 있는 여러 ‘미사 준비 기도’를 부록에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애롭고 자비로우신 어머니,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가련하고 부당한 이 죄인이 어머니께 피신하여 온 마음과 정성으로 어머니의 보호를 간청하나이다. 어머니, 지극히 사랑하는 아드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곁에 서 계셨으니 오늘 이곳과 모든 성당에서 제사를 봉헌하는 가련하고 죄 많은 저와 모든 사제들 곁에 인자로이 함께하시고 도와주시어 저희가 지극히 높으시고 삼위일체이신 한 분 하느님 앞에 마땅하고 정성스러운 제사를 바치게 하소서.” (「로마 미사 경본」 부록 VI-미사 준비 기도 1386쪽)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6월 3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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