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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9 조회수86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9월 19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Take care, then, how you hear.
To any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seems to have will be taken away.
(Lk.8.18)
 
 
제1독서 에즈라 1,1-6
복음 루카 8,16-18
 
제가 어렸을 때에는 화장실이 지금처럼 실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특히 텔레비전을 통해서 무서운 장면을 보고 난 뒤에는 화장실 가는 것이 더욱 더 힘들었지요. 그래서 항상 어머니나 형 누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던지곤 했습니다. 함께 가서 화장실 밖에서 나를 지켜달라는 것이지요. 혼자서는 너무나도 무서운 화장실. 그러나 바로 밖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을 하고 중요한 볼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에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습니까?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컴퓨터를 발명했나요? 아닙니다. 제가 쓰고 있는 모든 것들은 바로 남을 통해서 받은 따뜻한 손길인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혼자서는 제대로 살 수 없게끔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왜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 속을 헤맬까요?

더군다나 우리가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되는 손길은 바로 주님의 손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내가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따라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꼭 붙잡으려고 할 때, 주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꼭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주로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살지요. 청소년이 되면 친구의 손을 붙잡고, 청년이 되면 애인의 손을 붙잡습니다. 결혼을 하고 장년이 되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부와 명예를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힘이 없는 노인이 되면 그저 지팡이를 붙잡고 허무하게 살 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지만 이 인생을 더욱 더 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을 붙잡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환하게 빛나고, 행복이라는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등불과 등경의 비유를 해주시지요. 즉, 등불이 등경 위에 놓여 졌을 때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이라는 등불을 내 마음 속의 등경 위에 모셔서 환하게 비춰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붙잡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만을 붙잡으려는 사람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에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주지요.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붙잡는데 최선을 다하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것이다(카트린 애덤스 샤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손으로 잡아야 하는것은?

할아버지와 함께 목장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년은 목장의 말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이 있었지요. 이 말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래서 언제나 이 말과 함께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이 말이 너무나도 아파하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도 목장에 안 계셨지요.

소년은 정성을 다해 말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나는 말을 보면서 밤을 새 가면서 열심히 찬물을 먹였지요. 하지만 소년의 이러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말은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하게 아팠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신 할아버지께서는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몰랐다는 말이냐?”라며 꾸짖으셨습니다. 소년은 정말로 몰랐지요. 그래서 울면서 말합니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제가 말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시잖아요.”

할아버지께서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사랑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그래서 그 안에서 왜곡된 사랑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이라는 어떻게 사랑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랑, 이러한 사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이 땅에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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