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미사 예물과 미사 지향 미사에서 흘러나오는 효과를 자신의 지향대로 적용해 주기를 요청하며 사제에게 주는 예물을 “미사 예물”이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부터 미사 때 예물을 봉헌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미사 거행에 필요한 빵과 포도주, 곧 미사의 예물과 구분되는 사랑의 예물도 바쳤습니다. 3세기에 문헌에 미사 봉헌 행렬 때 빵과 포도주, 꽃, 초, 기름, 과일을 제단으로 가지고 나와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사도전승). 사제는 미사에서 예물을 봉헌한 이들을 “지향 판”(dyptica, dipticus)을 보며 기억하였습니다. 사랑의 예물은 미사와 관련이 있고 미사의 의미를 드러내지만 성체 성혈로 변할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예물도 빵과 포도주에 결합되어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향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세기부터 서방교회에서는 미사에서 누룩 없는 빵을 쓰고, 봉헌 행렬 때 빵 대신 돈을 바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봉헌된 돈은 주로 성직자들의 생계 지원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다른 형태의 “미사 예물” 관습이 나타났습니다. 예물을 봉헌한 교우가 요청한 특정 지향에 따라 사제가 미사를 거행하는 관습입니다. 이러한 관습은 개인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널리 퍼졌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에 연옥 교리가 나타났습니다. 곧 성실한 신자라도 죽은 뒤에 연옥에서 정화될 필요가 있다는 사상입니다. 교우들은 교회의 기도로 연옥 영혼이 “불의 정화에서” 더 빨리 벗어날 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도 가운데 미사가 가장 뛰어난 효과가 있었습니다. 미사가 지금 여기 있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신학자들은 “미사 열매”의 신학으로 풀이하였습니다. 미사는 본질적으로 예수님이 바치신 십자가 제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미사의 품위는 절대적이고 그 가치는 무한합니다. 그런데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는 그 “열매” 또는 은총을 얻습니다. 신학자들은 교회 전체를 위한 일반 은총, 사제 직무를 위한 특별 은총, 사제를 포함하여 신자가 받는 개인 은총을 구분합니다. 이 은총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해는 수많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비추지만 누구나 똑같이 햇빛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가리구 라그란제). 그리고 그것은 교회의 기도 안에서 다른 이에게 다른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곧 사제는 직무를 통하여 미사 효과가 교우가 요청한 사람에게 가도록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무렵에는 개인 미사가 많아져 교우들은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도 쉽게 그 적용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 지향은 교회의 일반 지향들을 밀어내거나 앞설 수 없어 이러한 과정에서 미사 예물에 법적 개념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예물과 미사의 관계가 희미해지고 예물은 쉽게 돈으로 대체되면서 미사 예물에 계약 성격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물을 가리키기 위하여 고대 로마 군인들에게 생계를 위해 지급하던 “수당”(stipendium)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사제에게 물질적인 예물을 주고, 그 대가로, 사제에게서 미사에서 나오는 영적인 예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물을 봉헌한 신자는 다른 사람은 빼놓고 자신이 미사의 특별한 효과를 독점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습과 이해는 무엇보다 예물과 미사 참여에 거리가 생기게 하였고, 미사 자체보다 그 효과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현대 전례 개혁에서는 미사는 거행 자체가 중심이며, 영성체로 절정에 이르는 신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교우들은 이제 모든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이며 모든 이의 구원을 향하여 열려 있음을 압니다. 또한 그들 역시 사제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그들의 지향들도 사제의 것처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회법에 따라 사제는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미사, 한 미사에 한 지향이 원칙이지만 예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구장 주교와 본당 주임은 주일과 의무 대축일에 한 미사는 예물 없이 자기 교우들을 위하여 거행해야 합니다(missa pro populo). 전통적으로 세상을 떠난 이의 영혼을 하느님 자비에 맡기는 지향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이를 위해서도 지향을 둘 수 있습니다. 성소를 위한 지향, 정의와 평화를 위한 지향을 비롯하여 정당하고 경건한 모든 요청은 지향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교우가 아닌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도 지향을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기념제이고 언제나 공동체 전체의 행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향 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세례, 혼인, 서품, 수도 서약 같은 예식 미사, 여러 가지 기원 미사, 위령 미사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미사에는 언제나 일반 지향이 있습니다. 항상 교회 전체를 위해, 산 이와 죽은 모든 이를 위하여 바치는 것입니다. 개인 지향은 이 일반적인 이 지향에 덧붙여지는 것입니다. 개인 지향은 교회의 일반 지향들을 밀어내거나 앞설 수 없습니다. 미사 예물은 사고파는 거래가 아냐 미사 예물은 근본으로는 교회의 봉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결합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사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시며 사람들에게 양식으로 내어주십니다. 이제 하느님은 예수님께 받은 제물을 은총으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십니다. 이렇게 미사 예물을 바치며 미사에 더욱 깊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우들은 자기가 요청한 지향에 따라 거행되는 미사에 영성체를 하면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미사 예물의 중요한 바탕은 교회 활동을 위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생계, 특히 연로한 이들, 교육받고 있는 이들, 선교사들을 위한 기부입니다. 한마디로 자발적인 사랑의 기부입니다. 이것이 미사 예물을 가리키는 말이 “수당”(stipendium)에서 “예물”(stips)로 바뀐 이유입니다. 미사 예물은 사고파는 거래가 아닙니다. 따라서 “미사 예물을 바쳤으니 이 미사는 내 것이다.”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미사 예물은 당연히 의무가 아닙니다. 나아가 교구와 수도회들에서는 예물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교회법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물 없이도 미사 지향을 요청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945조). 사제가 감사기도문을 바칠 때 요청받은 지향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원칙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교우들이 미사 지향을 청하면서 미사 때 이름을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에는 교회 전체의 미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잘못, 또는 영적인 이익보다 인간적 만족을 앞세우려는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요청한 지향에 따라 제사를 봉헌하고 그 효과를 적용하는 것은 이름을 부르는데 있지 않고 교회의 기도, 곧 사제의 직무에 있습니다. 이름을 말한다고 효과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 안 부른다고 효과가 작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우들은 미사 지향을 청할 때 이름 부르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 자비와 교회의 기도에 의탁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또한 사랑의 예물은 사람에게 덜 드러날수록 하느님 눈에 더 귀하고 아름답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목의 이유로 미사를 시작할 때나 신자들의 기도에서 지향의 이름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도 미사의 근본 뜻이나 미사의 공동체 차원을 생각하여 매우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혼인, 서품, 수도서약과 같은 예식 미사, 서품이나 서약 기념일, 또는 회갑에 바치는 기원 미사, 위령 미사에서는 감사기도문과 그 미사 기도문들에 제시되거나 허용하는 대로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6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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