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성심을 상징하는 금낭화와 베고니아 - 금낭화. 여러해살이풀 금낭화. 꽃의 맵시가 조신하고 예쁜 것이 마치 여인네들이 치마 속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던 두루주머니와 비슷하다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며느리주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그 모양이 심장과 비슷하게 생긴 데다 색깔마저 붉어서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다 하여 ‘피 흘리는 심장’(bleeding heart)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금낭화(錦囊花)란 곧 ‘비단주머니 꽃’이라는 뜻인데, 서양인의 눈에도 역시 아름다운 꽃으로 보였다. 그래서 금낭화의 학명(學名)은 디켄트라 스펙타빌리스(Dicentra Spectabilis)다. 여기서 dicentra는 그리스어로 ‘둘’을 가리키는 디스(dis)와 ‘꽃뿔’을 가리키는 켄트론(centron)의 합성어로, 이를테면 ‘꽃뿔이 두 개인 꽃’이라는 뜻이다. 금낭화에서 꽃뿔은 두 장의 겉꽃 끝부분이 위로 젖혀져 툭 튀어나온 부분을 말한다. 그 속은 비어 있거나 꿀샘이 들어 있다. 그리고 spectabilis는 장관(壯觀), 곧 ‘크게 구경거리가 될 만하거나 매우 보기 좋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금낭화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겠다. 금낭화는 활처럼 휜 20-30㎝ 정도 길이의 꽃대에 주머니 모양의 꽃이 많게는 20여 송이 줄지어 대롱대롱 매달려 핀다. 꽃송이 하나하나는 연한 자홍색의 심장 모양으로 사뭇 모양새가 현란해 보이지만, 그 꽃송이들이 조랑조랑 땅바닥을 향해 고개 숙인 모습은 마치 무엇에든 또는 언제든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금낭화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가톨릭교회의 식물학자들은 학자이기에 앞서 신실한 수도자였기에 이 꽃의 겸손한 자태에서 성모님의 면모를 보았다. 이 꽃을 보면서 사람을 위한 각별한 사랑과 온정을 보이시고, 심지어는 칼에 꿰찔린 듯 아파하신 그분의 마음을 연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볼 때 금낭화는 성모님의 마음, 곧 ‘성모 성심’이었다. - 베고니아. 이렇듯 독실한 신심에 바탕을 두고 식물계를 관찰하던 수도자 식물학자들의 시선에 성모 성심 또는 예수 성심으로 비친 꽃은 금낭화 말고 또 있었다. 그 중에는 베고니아도 있었다. 베고니아는 아메리카 원산으로, 열대와 아열대뿐 아니라 온대 지방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우거나 번식시키기가 어렵지 않아서 예로부터 관상식물로 널리 재배되어 왔다. 또한 변이종(變異種)을 만들기도 그리 까다롭지 않아서 품종이 무려 적게는 800종에서 많게는 1700종을 헤아릴 정도로 다양하다. 그중에는 잎이 일그러진 심장 모양으로 생겼거나 꽃이 심장과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는데, 특히 Fuchsia Begonia(학명: Begonia fuchsioides Hook)라는 품종은 예수님의 마음 곧 예수 성심을 상징하고, Begonia fuch. rosea라는 품종은 성모님의 마음 곧 성모 성심을 상징한다고 여겨져 왔다. 성령을 상징하는, 그리고 성모님의 신발이라고도 불린 매발톱꽃 앞에서 살펴본 꽃들이 공통으로 한 가지를 의미하거나 상징한다면, 하나의 꽃이 여러 의미나 이름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매발톱꽃이 그런 꽃이다.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로 북반구 전 지역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이 꽃은 파란색(또는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대비되는 꽃의 색깔과 독특한 꽃모양이 아름다워 널리 사랑받는다. 아래로 피는 꽃 위로 솟은 긴 꽃뿔 다섯 개가 매의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매발톱꽃’이라고 불리는데, 서양 사람들은 이 꽃을 보면서 매발톱이 아닌 비둘기를 연상했다. 그래서 이 꽃의 영어 이름은 ‘비둘기’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 콜룸바(columba)에서 유래한 콜럼바인(Columbine)이다. 이 이름에는 ‘작은 비둘기’ 또는 ‘비둘기처럼 생긴’이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이 꽃의 학명은 아퀼레과 불가리스(Aquilegua vulgaris)인데, 여기서 aquilegua는 라틴어로 ‘독수리’를 뜻하는 아퀼라(aquila)와 연관되는 말이다. 매발톱꽃이란 이름의 유래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한편으로는 이 꽃의 꽃뿔에서 독수리의 발톱을 연상했다고 할 수 있겠다. - 매발톱꽃. 매발톱꽃은 문화권에 따라 각기 다른 상징성을 갖고서 인기를 누려 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이 꽃을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상징으로 여겼다. 켈트 문화권에서는 꿈과 환시의 세계와 이 세상을 이어 주는 정문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왕궁이나 귀족의 궁성에서 재주를 부리는 어릿광대의 모자라고 보았고, 오스트리아에서는 ‘한데 모여 있는 다섯 마리 새(비둘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가 하면, 매발톱꽃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아래로 피는 꽃송이마다 꽃뿔 다섯 개가 솟아 있는 특이한 생김새 특성 때문에 나름의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지에 옹기종기 달린 꽃송이들에서 저마다 솟아오른 꽃뿔들을 보면서 한데 모여 앉은 비둘기들을 연상했고, 그래서 성령을 상징하는 꽃이라 여기게 되었다. 또 매발톱꽃 일곱 송이 묶음을 보면서는 성령의 일곱 은혜를 가리킨다고, 세 송이 묶음을 보면서는 신・망・애 삼덕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식물의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것을 보면서는 그것이 삼위일체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또한 이 꽃의 색깔인 파란색(또는 보라색)은 수난과 참회를 나타내고, 노란색은 빛과 활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한편, 중세기의 미술 작품들을 보면, 이 꽃이 그리스도의 꽃으로, 곧 구원의 역사에서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에도 기쁘고 의미 있었던 예수님의 구세 활동의 표징으로서 종종 화폭에 등장한다. 가령 성모 영보, 그리스도의 강생, 주님 탄생,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님 경배,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등의 장면에 이 꽃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꽃이 배치되는 자리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화폭의 오른쪽 하단 귀퉁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물론 이 꽃이 더러는 예언자들, 성인들, 심지어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을 그린 그림들에도 등장하는데, 이 경우에는 아마도 신실함, 성령의 그느르심과 가호, 악을 거슬러 씨우는 수호자들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또 교회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저 옛날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셨을 적에 발을 내디디신 자리에서 이 꽃이 솟아났다고 하여 ‘성모님의 신발(또는 슬리퍼)’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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