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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속마음까지도 청결한 상태로 /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1 조회수539 추천수11 반대(0) 신고
 
 
 
속옷을 자주 갈아입어야 하는 이유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휴게실에 들렀더니 게시판에 한 장의 편지가 게시되어 있었다. 브라질에서 선교사제로 일하던 발렌티노 신부님이 그의 방에서 의자에 앉은 채 마치 잠이 들어 있는 듯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그의 시신을 이탈리아에 비행기 편으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세상을 떠난 발렌티노 신부님과 비슷한 연배의 70대 은퇴신부님 한 분이 무거운 표정으로 그 편지 앞에서 발을 떼어놓지 못하고 한참 동안 서 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울컥 목이 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부님이 잘 아시는 분이세요?”
“잘 알다마다...... 훌륭한 선교사였어.”

‘훌륭한 선교사였다’는 짧은 답변을 마치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가는 그 신부님의 굽은 등에서 평상시와는 다르게 깊은 가을처럼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방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지금 나처럼 여느 다른 날과 똑같이 책상에 앉았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마지막이 되었단 말이다. 나 역시 발렌티노 신부님처럼 이대로 책상 앞에 앉은 채 굳은 몸으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다면......

왜 그랬을까? 가장 먼저 속옷을 갈아입고 싶어졌다.  지금 살아있는 채로야 절대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만약 내가 누군가에 의해 잠든 채로 발견된다면 틀림없이 다른 이들에게 그 당시 입고 있던 그대로의 속옷을 보여줘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세제의 향이 은은히 남아 있고 무늬도 깔끔한 속옷을 입은 채 발견되고 싶다.

죽음이란 것은 그런 것 일게다. 그 동안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속옷조차 아무 저항 없이 다 보여줘야만 하는 것, 내 살아온 삶의 정지된 한 컷, 그 죽음의 순간이 담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 동안 잘 감추고 살았던 치부들까지 다 드러내게 되는 것.

내 마지막 순간이 언제가 될지 나로서는 결코 알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오고야 마는 그 순간을 위해 잘 준비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내 육신의 속옷뿐 아니라 내 영혼의 저 깊은 곳을 감싸고 있는 내 속마음까지도 청결한 상태로 사람들과 하느님 앞에 눕고 싶다.

매일 새 속옷으로 갈아입기 위해서 여러 벌의 속옷을 사둘 수는 있지만 우리들 마음은 더러운 여러 벌을 쌓아둔 채 그때그때마다 새마음으로 번갈아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마음은 매일 벗어서 매일 빨아야만 한다. 주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갈고 닦는 수련이야말로 향기 나는 사람으로 살고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더러운 속옷을 입은 채 겉옷만 화려하게 차려입어서는 결코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없듯이 오랫동안 갈아입지 않은 불결한 영혼을 입고 육신만 그럴 듯하게 놓고서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속옷이 남에게 보이기 참 부끄러운 일이듯 더러운 마음을 몇 년씩 입고 버티는 것 역시 주님께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주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훌륭한 선교사’ 발레티노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간절히 기도한다.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마르8,37-38)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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