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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증거하는 그 입술은 천국을 차지할 겁니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1 조회수412 추천수0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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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통로 순례길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우리 교회는 특별히 9월을 순교성월로 정해놓고

순교에 대한 묵상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벌써 순교성월이 많이 지나고 있는데

여러분들, 순교성월을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순교성월을 지내고 있느냐와 순교성월을 산다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순교성월을 산다는 것은 체험을 통해서 순교의 열매를 맺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순교성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그냥 지내고 있는 형식적인 순교일 겁니다.

 

순교에는 육적인 순교와 영적인 순교가 있습니다.

육적인 순교는 말 그대로 하느님을 위해서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순교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육적인 순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영적순교의 첫 단추는 과연 무엇인가?

영적인 순교의 첫 단추는 화내는 것 참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분노도 이기지 못하면서 어찌 목숨을 내놓는 순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다보면 화가 날 수 있는 분위기나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거나, 나의 그릇을 넓히거나,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저주하고 미워하기보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이것이 바로 순교의 시작이 아닐까?

 

화나는 것은 자기 쪽에서 나타나는 방어본능이기 때문에

화나는 것을 참는 것은 자기애착으로부터 자기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회복이며

죽음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모든 영성 중에서 가장 어렵지만

하느님께 직접 갈 수 있는 것이 포기의 영성입니다.

 

영적순교의 두 번째는 자기 혀를 다스리는 겁니다.

 

우리들이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것의 대부분은 혀를 다스리지 못한 겁니다.

혀를 다스리는 자가 영원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바다에 떠있는 큰 배도 물속에 가라앉은 작은 키가 있어야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혀는 입속에 갇혀 있지만 이 혀를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

천국을 차지할 수도 있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지껄이고, 없는 말 꾸며내고

보지 않은 것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상처를 입히며 살아갑니까?

 

영적순교의 세 번째는 자기 악습을 이기는 겁니다.

 

악습은 자기 의지로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악습을 이겨내려면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분노하는 것 참고, 혀를 다스리고, 자기 악습을 다스리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미움으로부터 해방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순교를 할 때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주시는 선물이

미워하는 사람, 원수를 사랑하는 용기까지 주십니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영적인 회복이요, 영적인 부활입니다.

 

한국교회는 순교의 교회입니다.

전 세계의 교회가 한국교회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교구마다 신학교를 만들 정도로 사제들이 늘어나고

수도자가 수 백명을 넘는 큰 수도원도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성소자가 많다고 해서 영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사제 수도자들의 영성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세속주의, 합리주의에 빠져서, 사제 수도자들의 영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목자가 참다운 모습으로 신자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교회는 축복을 받고 있는 나라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잘 살고 있어서 그런 축복을 받는 것이냐!

결론은 아닙니다.

우리 순교선열들의 파가 거름이 되고 꽃이 되어 그 열매를 맺고 있는 겁니디.

우리 신앙선조들에게는 냉담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교적에 3000명이라고 해봐야 주일미사 참석하는 사람은 6~700명밖에 안 됩니다.

수계생활 하는 사람은 반도 안 됩니다.

우리가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 살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답을 우리 후손들이 누리고 있는 겁니다.

 

순교사화를 읽어보면 나도 그분들이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내가 과연 목을 내놓을 수 있을까?

목을 내놓기보다는 배교하기가 쉽지 않을까!

 

천주교신자들을 잡아다가 모진 매질을 하면 뼈가 부러져 살 밖으로 튀어나와도

절대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침 한 번 뱉고, “나 안 믿습니다!”

한 마디만 하면 귀중한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을텐데~

포졸들이 하도 답답하니까

“이보게 이서방,! 침 뱉고 나가서 아이들 데리고 살아야할 것 아닌가!”

그러나 단 1초라도 하느님을 배반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앙케이트에 의하면 우리 한국천주교신자들 세례 받고 난 뒤에 점집이라든가

무당집이라든가, 철학관을 찾아가는 사람이 무려 40%라고 합니다.

기분 좋으면 성당에 나오고, 기분 나쁘면 안 나오고~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하고 매달리기보다는~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우리 선조 신앙의 선배들은 내가 죽고 나면

그 자식이 부모 없이 거지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그 모습이 아롱거렸을텐데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나로 인해 부모와 친족들이 삼족을 멸할 것이 뻔한데도 하느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순교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영적훈련을 통해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영적순교는 화 내는것, 혀를 다스리는 것, 자기 악습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순교선조들은 공수부대가 특수훈련을 받듯이 그런 강한 영적훈련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수계생활을 철저히 했습니다.

십계명의 깊은 뜻을 알았고, 하느님을 흠숭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도둑질 하지마라 간음하지 말라 이것은 기본이었고

더 적극적이고 사랑의 계명을 행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인 선(善)을 해야 천국에 갑니다.

성서 어디를 보아도 자기혼자 착하게 산다고 천국에 간다는 것 없습니다.

 

수계생활에는 적극적인 수계생활이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하지 말라~' 지키는 게 소극적인 수계생활이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베푸는 것' 이 적극적인 수계생활입니다.

 

대부분 소극적인 수계생활로 만족합니다.

'나 도둑질 한 적 없지, 간음한 적 없지~'

세상사람 들도 그 정도는 양심이 있다면 하고 삽니다.

 

흉년이 들어서 외인들 동네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교우촌에는

오히려 빵의 기적이 일어나서 곡식을 모아서 외인들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비록 귀동냥해서 들은 하느님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다가

혓바닥이 뽑혀죽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하느님을 증거하는 그 입술은 천국을 차지할 겁니다.

 

두 번째 영적훈련은 기도생활에 철저했습니다.

그때 당시 무슨 기도서 책이 있고 영적독서 책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영적독서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신자로 살아가면서 성인성녀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책이 없던 시적 일일이 써서 외웠고 

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아침저녁기도, 삼종기도, 식사전 기도.....

듣고 외워서 모든 신공을 철저히 했습니다.

 

‘기도’ 라고 하는 것은 개신교에서 온 것이고

단순히 ‘빈다’ 는 뜻밖에 없습니다.

 

우리 천주교는 옛날부터 기도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신공이었습니다.

신공은 거룩한 기도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아침에 밥을 못 먹고 학교를 가는 한이 있어도

조과 철저히 했고, 저녁에도 만과를 하지 않고는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그토록 귀찮고 하기 싫었던 기도가

지금의 내 사제생활을 지켜주는 힘입니다.

저는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기도를 해야만 하루를 마칠 수 있습니다.

그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배운 영적선물입니다.

 

지금 가정은 조과도 만과도 없어졌습니다.

저녁때만 되면 애들은 컴퓨터 앞에서, 부모는 TV앞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촛불 켜놓고 기도하는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다 부모님의 탓입니다.

 

현대는 영적인 에너지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머리가 커지면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당 나가라” 하고 소리 지를게 아니라 부모들이 회개하십시오.

기도생활을 안 하는 부모를 보고 그 자식들이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우리 순교선조들은 포졸들에게 쫓겨 다닐 때라도 기도만은 놓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갑옷입니다.

이 갑옷이 무겁고 귀찮다고 훌훌 벗어던지면

사탄이 쏘는 화살에 맞아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영적 갑옷을 입고 살아야 됩니다.

 

감옥 안에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 몸으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배교하지 않고 순교하게 해 주십시오!”

장소가 어디든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든 기도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기도를 놓습니다.

오늘 너무 피곤해서 못 하겠어~

오늘 화가 나서 기도가 안 돼~

하늘나라에 쌓는 보배가 바로 기도입니다.

 

세 번째 영적인 훈련은 전교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알릴 수 있을까!

대놓고 전교할 수 없었던 그 시절, 하느님나라와 천국을 알리기 위해

우리 교우들은 옹기장사를 하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목숨을 건 전교를 했습니다.

 

‘과연 나는 세례 받고 여태까지 몇 영혼이나 하느님 앞에 인도했을까!’

우리 주위에는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참 많이 있습니다. 내 무관심, 무성의 때문에 그 사람들을 입교시키지 못한다면

분명히 하늘나라의 심판거리가 될 겁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 세 가지의 영적인 훈련을 통해서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순교성인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천상에 계신 순교성인성녀 들이시어,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11. 09. 16 연중 제 24주일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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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 성지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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