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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2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3 조회수29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9월 23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2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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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이 또 다시 등장합니다. 헤로데가 당황했듯 분명 하느님의 사람인데 누군지 알 수 없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는 한심하게까지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이것이 하느님의 선택이었으니 그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도 헤로데도 모르는 예수님이 정체에 대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분명히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이름으로 기억되지 못하는 예수님은 당신과 다를 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느끼는 당신을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 중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누구도 모르는 비밀을 알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정체는 사람들에게 궁금함 정도였지 숨겨진 비밀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도 헤로데도 예수님을 볼 때 아무 볼품 없는 사람으로 알았으나 그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알아보는 베드로의 선언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느님과 직접 연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따르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이라는 이름 아래에 주어져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의 말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같은 자녀라고 말은 하지만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하느님과의 거리가 있는 듯 생각하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그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의 신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연결되는 것은 생소한 일이 되고 맙니다.

적어도 교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어떤 모임이나 과정에 소속되어 활동하지 않는 한 하느님과 그 사람을 직접 연결시켜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소리없이 성당에 다니는 신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이 행동은 그런 신자 한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한 사람, 그가 하느님의 이야기를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하는 것을 보고 그가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사람이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율법학자도 바리사이도, 예언자도 아닌 그렇게 하느님의 사람으로 완성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고, 되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이 이미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선언이기에 베드로의 눈과 선언이 놀라운 것입니다. 대단한 분을 알아봐서 놀라운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를 하느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통할리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베드로의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옳다한들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인생이 누구의 지도나 규칙의 틀 안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을 말하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야기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공인된 하느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평범한 하느님의 사람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신자가 열심히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고 해도 하느님을 가르치고 지켜낸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반대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며 결국 그 이유로 하느님의 이름을 통한 벌을 통해 그의 진실이 묻혀지고 더럽혀지며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예고한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며 얼마나 명분이나 자리에 연연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 살고 하느님을 믿는 것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람과 자신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우리와 함께 사신 사실 그대로의 하느님께서 평범해서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크게 경계하고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단순히 예수님 당신 죽음의 예고가 아니라 이 시대 모든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죽음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을 원하셨을까요? 구원을 말하면서도 이미 세상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높낮이를 정하고 출발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구원의 끝에서 그 사람들은 어색하지 않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평범한 하느님께 십자가라는 죽음을 건넨 하느님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가 바라는 구원의 일그러진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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