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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4 조회수661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Pay attention to what I am telling you.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Lk.9.44-45)
 
 
제1독서 즈카리야 2,5-9.14-15ㄷ
복음 루카 9,43ㄴ-45
 
아침이 가면 저녁이 오는 것, 새 것은 헌 것이 된다는 것, 젊은 사람도 늙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진실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주 잊어버립니다. 지금의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요. 그래서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할 수 있는 것도 쉽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희망도 간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신부님이 정말로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으로 ‘신부님’을 적곤 했었지요. 그리고 그 희망은 간직하고 신학교에 입학을 했었습니다. 입학 한 뒤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7년의 신학교 생활과 3년의 군대생활.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포기했을까요? 만약 신학생으로만 계속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아마 도중에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신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했기에 지금 이렇게 신부로 살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자리에 연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로 포기하기도 하는 것은 바로 변할 수 있다는 진리를 거부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의 100%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다 보니 변할 수 없는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하나의 변화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즉,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알아듣지 못하고, 그 뜻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이 변화가 두려워 예수님께 물어보지도 못하지요. 아마 지금의 자리가 영원하길 원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들 역시 예수님을 따르면서 행복만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고여 있으면 썩을 수밖에 없듯이, 이렇게 변화 없이 살아가면 타성에 젖으며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큰 변화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진실로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변화이기에…….

최고의 순간에서도 더 뛰어난 최고를 위해서 지금의 자리에서 변화를 꾀하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까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실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님 안에서 진실로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괴테).




친구

신학교 1학년 때의 친구들입니다. 유치했네요. ㅋㅋㅋ

친구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친구란 좋을 때에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이 무엇을 하든 이해하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에 대해서 진심을 말해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친구란 언제든지 당신을 격려해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과 경쟁하지 않는 사람이다.
친구란 당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일이 잘 안될 때 당신을 격려해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만약 그가 없다면 당신이 불완전해지는 당신의 반쪽이다.

수잔 폴리스슈츠의 ‘나누는 사랑을 알기까지는’ 중에서 골라 보았습니다. 지금 제 방에는 친구 한 명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서울 신학교에 함께 입학한 동창 신부입니다. 어제 늦게까지 술잔을 함께 기울이며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신학교 다닐 때 우리의 관계가 나빴다면?

항상 좋은 만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미래에도 좋은 만남이 생길테니까요.
 
 
 
 Bor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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