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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과 해방 체험(김혜윤 수녀님 강의요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5 조회수1,149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김혜윤 수녀님의 성경여행 스케치 제5회 중간 부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구원과 해방체험
진정한 평화와 안정과 번영이란?
 
많은 교우분들에게 성당에 오신 동기를 질문드리면 많은 분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은 그 만큼 내가 불안하고
의지할 데가 없다라는 것이고, 그 어느 것도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그런
아픔에서이고, 또한 절대적인 어떤 진리를 찿게 되는 거고 당연한 일인데 평화와
안정과 번영, 이 자체는 물론 좋은 것이지만 굉장히 위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평화스러울 때는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성경의 모든 내용은 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주 극도의 죽음같은
광야를 건널 때나 늘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이것을 원하시는데 그 번영과 안정과
평화가 때로는 '하느님의 의지(뜻)'를 무마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는 진정한 구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평화이시므로 평화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평화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번째 평화는 내가 좀 안락하게 느껴지는,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는
내가 아늑함을 느끼는 거죠. 웰빙과 연결된 그런 평화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느님의 평화는 '그분이 여기에 함께 계시기에 가능한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를 선포하실 때 "그들 가운데 서시어"선포하셨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그 누구도 전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화는 단순한
아늑함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 공동체 혹은 내 안에 함께 계실 때만 그 평화는 가능한 거란 거죠.
 
다른 말로 하면 난 매일 '불안, 초조, 안달났다'그러면 내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신 거죠.
부활은 수난과 죽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듯이 수난과 죽음이 반드시 전제 될 때만
부활이 가능한 것이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계실 때만 평화가 주어지는
거거든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늑함을 찾는다' 하지만 웰빙적 평화 추구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평화는 잠정적인 평화인듯한 그런 평화지요.
 
진정한 평화는 그 수난과 고통과 죽음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사선을
넘었을 때 가능한 평화입니다. 이것이 구원 체험이고, 해방체험이고, 이것이 있기에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또한 이것은 복음화 되었을 때만 이것이 가능하지요.
 
구원은 죽어서만 가능한 것인가요?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천당을 살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천당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늘 지옥같이 살고 있다면 유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래 지향적인, 미래 중심적인
신학이 현실 중심적인 시각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종말론을 이야기 할 때요.
 
지금 여기에서 구원과 해방과 자유를 체험 하셔야만 되는데 쉽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모두를 하느님 나라를 못살게 하는 요소들이 천차만별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아킬레스건이 각각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경위나 그 여정이 똑같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다들 다릅니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극도의 사면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거기서
하느님을 체험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만난 다음에는 그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그곳으로 투입되는데 그 이유는 그 전에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고 실패를 했으나 이제 하느님을 만났으니 다시 돌아가도
두렵지 않다.왜? 하느님과 그 상황을 대면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조건이 변하고 환경이 변해서 내가 해방됐다'
이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다 같은 조건을, 하지만 전혀
다른 복음화된 실체로서 마주하게 하는 것, 이게 바로 구원의 힘이고 하느님의
역동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180도 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너무 너무 두렵고, 그러니까 다 도망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180도
달라진 다음에는 다시 가는 건데 그걸 다시 힘있게 가는 차원이라는 거죠.
구원과 해방은 180도 변화되는 그 모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복음화된 이는 이기주의에서 이타주의로 가는 것입니다. 
 
다음은 수녀님의 책 '생손앓이'의 한 부분입니다.
"세상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주인이신 하느님의 질서에 맞추어 돌아갑니다.
결국 우리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마찰과 두려움은 세상을 하느님의 질서에 맞추지
못하고 나의 질서에 맞추기 때문에 생겨나지요. 
 
내 질서가 우주의 잣대가 되다 보면 내가 왜 너보다 키가 작은지, 내가 왜 너보다
머리가 나쁘고 가난한지, 왜 내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누구의 딸로 태어났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어지고, 애당초부터 내가 동의한 선택이 아니었으니 세상은 못마땅하고
억울한 곳이 되고 말 뿐입니다. 
 
결국 인간이 슬픔과 절망이라는 삶의 고질적인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위주로만 세상을 보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생손앓이'라는 고통을 체험하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인 거죠. 
 
이러한 맥락에서 성경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그 질서 안에 배당된
나의 위치와 삶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이 지혜와 구원의 조건이라고 단언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하느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고 그 때문에 구약성경은 하느님 없이 사는 어리석은
삶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타인의 능력에 갈채를 보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찿아내어 묵묵히 걷는 삶, 충분히 의미있고 멋진 삶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느님은 사랑하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비결은 제시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시면 됩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데 그 누군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생인손을 앓아 손톱이 빠지고 나면 여리디
여린 분홍색 손톱이 새로 납니다. 그 홍조를 띤 새 손톱이 어찌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겠는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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