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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2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5 조회수31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9월 26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6-50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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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것 중에 가끔은 하느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에도 크기가 존재하고 그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에서 차별도 등장할 때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말하면서도 우리는 하느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시는지를 두고 다툴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는 것으로 정해진 계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그 크기에 따라 우리는 질투를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사랑이신 하느님이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렇게 어이 없는 모습이 분명히 있는가 봅니다.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따라 나선 길에 도대체 가장 크다는 기준이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이 평소 아끼시고 더 사랑하신다 생각한 사람이 그들 중 가장 큰 주인공일텐데 그것을 누가 판단하고 정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아니라면 전혀 불가능한데도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답도 없는 이기적인 싸움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어린이 하나를 곁에 세우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자신이 더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크기를 한꺼번에 부끄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들은 좀 더 크기 위해 자신들을 이야기하고 치장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어린이의 모습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가르치신 것은 좀 더 훌륭하고 좀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로 어린이와 같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기에 그 모습으로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단순히 겸손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곁에 세우신 어린이가 겸손의 상징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실천하는 아들의 모습이요, 제자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제자들 사이에 스승이신 예수님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살면서 간직하고 기억해야 할 가르침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더 크고 높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에 우리 보다 크신 스승이 어떻게 사셨는지 기억하고 따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철없는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은 그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이들마저도 서로 비교하고 자신들의 크기를 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과 함께 있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나름의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 밖의 어떤 것도 우선 거부하고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제자들 사이에 이기적인 모습에서 자연스레 발전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 사이의 순서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그 울타리는 다른 이들과 구별시켜 우월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누구에게 먼저 닿았다고 해서 사람의 순서가 정해지고 하느님 은총의 크기가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정의는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이렇게 차별을 짓고 나아가 밖으로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또한 그것에 사명감조차 가지는 일들도 일어나곤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함께 있지 않는 이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지는 것은 복음을 잘 이해하는 길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오늘의 교훈은 앞서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그런 순서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의 뜻을 지켜 따르는 어린이와 같은 가장 작은 이의 모습으로 산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도대체 크기가 의미가 있는지 깨닫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겸손을 가르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근본은 작은 이, 어린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으로 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함께 다니지 않는 사람들, 그분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채로 세상에 소리 없이 예수님의 모습을 따른 사람에게 예수님은 들리지 않는 메세지를 전하십니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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