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밥을 먹고 열심히 페달을 밟아 학교에 도착 할쯤이면 아직은 그리 춥지 않은 날씨라서 헬멧을 쓴 머리와 얼굴부위는 온통 땀으로 흠뻑 젖는다. 4층의 강의실을 찾아 계단을 올라가다가 아무래도 세수를 한 번 해야겠다 싶어 2층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온통 공사중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장실을 쓰는 게 아니라 얼굴만 씻으면 되는데 뭐 어쩌겠냐 싶어서 그냥 안으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있는데 밖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릴까? 누가 또 들어왔나보다.”
천천히 세면을 마친 뒤 가방을 챙겨 들고 여유 있게 콧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세상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질까? 화장실 문이 밖에서 잠긴 것이었다.
나중에 공사하던 사람들 이야기로는 사용이 금지된 그 화장실 문은 그 안에 있는 공구를 빼내기 위해 약 2분 정도만 열려 있었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하필 내가 얼굴을 씻으러 안으로 들어갔고 그 사람들은 밖에서 문을 잠그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밖에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많이 들려왔으므로 나는 문을 두드리며 ‘Aiuto! Aiuto!(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외치야만 했는데 화장실에 갇혀서 그런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너무나 우스워서 오히려 한참을 킥킥거리며 소리 죽여 웃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정신이 번쩍 들어 그때서야 열심히 문을 두드리며 ‘도와주세요’를 외치기 시작했는데 이미 수업에 늦어 마음이 급해진 학생들은 들은 채도 않고 그냥 지나치거나 가끔 ‘안에 누구 있어요?’라며 대꾸를 해주던 학생들도 잠시 꾸물대다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참 동안을 화장실에 갇혀 있는 동안 서서히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는 뜸해지고 나는 출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교수신부님의 싸늘한 표정을 떠올리며 아까의 웃음은 간데 모르게 열심히 문을 두드리며 ‘도와주세요’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가방을 놓고 그 위에 쪼그려 앉아 한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사람 하나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내가 다시 열심히 문을 두드리며 ‘도와주세요’를 외치자 단정한 여자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으이그... 하필 이런 그림에서 창피하게 여성이 등장할게 뭐람. 대꾸를 안 하고 조용히 있을까?’라는 유혹이 잠깐 들긴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에 누구 있어요?”
“네, 문이 밖에서 잠겼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또 5분여가 지나자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마치 인질을 구출한 특공대원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관리인 아저씨 옆의 예쁜 인도 출신 수녀님을 보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하마터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아이고 수녀님, 어떻게 이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에 사람 있냐고 묻기만 하고 그냥 슬그머니 가버렸거든요.”
“그래서 아침부터 화장실에서 감옥살이를 하셨네요? 큭큭큭”
그 수녀님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그 말을 마치고는 마치 천사가 구름 위를 걷듯 얌전한 걸음으로 사뿐히 사라지셨다. 1교시가 거의 끝나갈 때쯤 싸늘한 교수신부님의 표정이 뒷통수에 꽂히는 느낌을 받으며 자리에 앉으니 다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1교시가 끝나자 옆에 앉은 헝가리 신부가 옆구리를 쿡 치며 묻는다.
“왜 늦게 와서 혼자서 웃고만 있었어? 무슨 일 있었어?”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어.”
“???”
사람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일정한 곳에 갇히게 되면 끊임없이 탈출을 생각한다. 더군다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평생을 갇혀 살아야 한다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탈출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체 목표가 되어 버린다. 똑같이 얼굴을 향해 퍼붓는 빗방울이지만 감옥 안과 밖이라는 몇 미터 높이의 담벼락을 경계로 해서 그 느낌은 삶과 죽음만큼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영혼을 스스로 ‘나’라는 감옥에 가둬 놓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에 의해 갇혀 있는 존재’를 깨닫고 불편해 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힘들다.
‘나’는 끊임없이 ‘너’를 향해 나아가려는 우리들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다. 죽을 때까지 그 안에만 갇혀 산다면,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너’와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비를 맞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찬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너’를 위하여 ‘나’를 던져버린 저 예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떠나라.”(루가 10,3)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