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26주간 금요일 - 파견 받았다는 의미는?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선사했는지 우리는 아직 잊지 않습니다.
역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기 힘들었던 우리 축구 대표 팀을 목표인 16강이 아니라 4강까지 올려놓았던 감독입니다. 그가 떠난 후에 아직까지 이런 영광은 오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브라질 대통령 룰라를 기억합니다. 그는 퇴임 당시에도 80%가 넘는 국민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으로 많은 국가 부채가 있었음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도움에 힘입어 아이들을 길가로 내몰지 않고 교육을 시켰고 8년 뒤인 지금 모든 국가부채를 갚고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을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던 브라질 시민들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들을 보면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성경말씀이 떠오릅니다. 또 어제 보았던 기사가 떠오릅니다.
세계평판순위에서 50개 나라 중 캐나다가 1위이고 한국은 34위, 아시아에서 우리 뒤로는 중국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10위권에 있다가 계속 떨어지는 순위입니다. 올바른 정치인을 뽑아야 합니다.
사람을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능력이 이렇듯 한 사람이나 한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당들에서는 신자들이 들고 일어나 사제를 몰아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더 좋은 공동체를 위해서 그렇게 하나봅니다. 어떤 성당에선 사제가 제 임기를 마치고 떠난 경우가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적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기저기서 본당신부를 바꾸기 위해 많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사회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는 시민들이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것이지만 교회의 사제는 ‘파견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견하는 주체는 교회 뒤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72제자를 뽑아 파견하시면서 이르시는 말씀입니다. 당시의 베드로는 지금의 교황님을, 12사도는 주교님을, 72제자는 사제들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도 파견 받은 자들을 평가해서 바꾸고 싶으면 바꾸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제들조차도 그 곳으로 파견 받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파견 받았으니 그 직무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코라진, 벳사이다, 가파르나움을 질책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큰 징벌에 처해질 것이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 분을 파견하신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본당 신부를 바꾸려 하는 것을 그 본당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파견하신 그리스도까지도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폭력사건의 80%가 가정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증가한 경우가 부모를 폭행하는 사건입니다. 돈을 안 준다고, 변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등으로 일 년에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잘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를 통해 태어나게 해 주신 것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것을 무시하는 행위가 폐륜이고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곧 그렇게 맺어주신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도 좋은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듯이 사제도 좋은 목자가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어쨌건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부모에게 폐륜을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목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폐륜을 저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