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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0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1 조회수302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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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욕심을 본성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이기적이리만큼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에 대해 계산하고 다투는 모습들이 발견되곤 합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온 세상의 평화를 말하는 신앙인들 사이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느님을 닮았다는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은 정말 우리가 처음부터 욕심을 운명처럼 지니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희망 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어이없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런 마음 역시 다른 사람의 욕심을 보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스스로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늘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이 정말 궁금한 것에 대해 묻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 가르쳐주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나라에서 존재하는 "서열"입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가보지도 않은 나라, 갈 수도 없는 나라를 짐작하는 데 있어서 궁금증은 여러가지 일 수 있지만 보통의 궁금증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에서 출발한다면 이 질문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자신들 서열을 따지고 다투던 제자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이 현실에서 예수님은 누구를 더 좋아하실까? 를 두고 싸웠다면 그들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의 인정을 더 많이 받을 사람은 누구인가를 두고도 궁금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편애하는 예수님과 하느님, 하느님의 선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 질문의 대답은 사람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은 생각보다 파장이 큽니다. 질문 자체로 하느님을 편애하시고 질투하시는 냉정한 심판자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의 답이 없기에 질문을 던져 놓고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달리는 방법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당사자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싸우고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 이 질문이 가지고 있는 무서움입니다. 사람의 이기적인 그림자로 하느님이 표현되고 마는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어린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생각을 뿌리부터 하나씩 건드려 고쳐주십니다.


첫째, 하늘나라에 우선 들어가려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요즘 어린이의 영특함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이는 배우고 익히며 자라나는 단계의 사람입니다. 어른이 시키는대로 혹은 어른이 판단하는대로 영향을 받는 이가 어린이입니다. 스스로의 욕심이나 능력으로 서로 다투어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해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심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렇게 서로를 판단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를 통해 하늘나라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욕심의 근본을 버리고 하느님 앞에 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하늘나라의 자기 자리를 탐하는 제자들에게 우선 하늘나라에 들어는 가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유머스런 내용이 담겨져 있으면서 동시에 하늘나라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들어설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사실 이 대답 하나로 하늘 나라의 큰 사람에 대한 생각은 중단이 되고 맙니다. 이미 그 생각 자체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제자들이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세상에서의 욕심조차 버려야 하늘나라에 들어설 수 있는데, 그런 이들이 들어선 하늘 나라의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무엇인가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안되는 세상이요 하느님 안에서 사는 세상이니 그곳에선 다툼이 있을리 없습니다. 자신을 위한 입장이나 생각으로 살지 않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함께 사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행복한 세상이라면 나의 자리나 나의 능력은 모두 서로에게서 확인되고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내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머무는 곳 어디라도 상관 없이 행복한 세상일 겁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는 가진 것을 감추고 겸손한 척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평가는 잣대 자체를 없애고 하느님과 세상 앞에서 남이 나보다 낫다는 진심으로 섬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답은 주셨지만 사실 이 답으로 제자들이 얻은 열쇠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있지도 않은 자리를 노렸고, 맞지도 않는 열쇠를 들고 다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니 생각을 바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늘나라가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소개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하늘나라에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하느님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어린이를 받아들일 때 당신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을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지만 그 이전에 제자들이 바로 예수님에 의해 받아들여졌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보다 약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제자들을 예수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알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결국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 보고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하늘 나라를 알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이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자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처럼 되는 길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 되고 싶다면 각오를 다지고 결심을 굳게하자는 자신을 담금질하는 노력이 아니라 가장 여리고 힘든 이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통해 그 이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보다 낮은 사람, 나보다 약한 사람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나의 세상에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너그러운 마음이 아니라 사랑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순서도 맞지 않고 내용도 말장난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이게 하늘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겁니다. 누군가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을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낮은 곳을 바라보며 비웃는 곳을 누가 하늘나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사는 삶을 누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상태가 영원이라면 그것은 행복의 완성이 아니라 영원한 불행과 싸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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