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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한 소작인의 삶 - 10.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2 조회수36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1.10.2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이사5,1-7 필리4,6-9 마태21,33-43

 

 

착한 소작인의 삶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몸담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강론 제목을 ‘내 삶의 포도밭’이라 했다가

얼른 ‘우리 공동체 삶의 포도밭’으로 바꿨다가

‘착한 소작인의 삶’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과 대조 되는

착한 소작인의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주님의 착한 소작인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첫째, 무지(無知)에서 벗어나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삶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모두 소작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시 세상에 와서 하느님의 시간에,

하느님의 땅에 몸 붙여 사는 소작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소작인으로의 우리 신분을 확실히 자각하는 것이

자기를 아는 일이요 겸손입니다.

복음의 소작인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여

주인이 보낸 종들을 무참히 살해 했습니다.

하느님의 보낸 예언자들을 계속 박해하고 살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징하는 악한 소작인들입니다.

 

정말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시간과 땅을 위임받은 소작인으로서의 신분을 철저히 자각했다면

이렇게 주님의 종들을 박해하지도 죽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자기를 망각하여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 악한 소작인들에 대해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탄식을 들어보십시오.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다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 포도를 맺었느냐?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꼭 우리 사회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좋은 포도 열매가 상징하는바 공정과 정의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선물을 아낌없이 주셨는데

많은 이들이 주님의 소작인으로서 자기 신분을 잊고

공정과 정의를 살지 못해 야기된 세상의 혼란입니다.

주님의 책임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의 책임입니다.

 

자기를 알아 소작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참 매력적인 인물이 이사야입니다.

오늘 서두 말씀을 통해 그의 하느님과의 친밀 관계가 참 부럽습니다.

 

“내 친구를 위하여 나는 노래하리라.

  내 애인이 자기 포도밭을 두고 부른 노래를”

 

주님을 친구라, 애인이라 부르는 이사야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충실한 소작인으로서의 삶일 것입니다.

 

둘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복음의 소작인들이 제 분수를 잊고 주인의 종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은

순전히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탐욕에서 무지요 교만입니다.

마음을 비울 때 자기를 아는 지혜와 겸손이요,

착한 소작인으로서 좋은 열매의 삶입니다.

욕심을 비울 때 깨달음의 은총도 뒤따릅니다.

 

착한 소작인들이라 할 수 있는 욕심을 비운 주님의 제자들은

시편 말씀에서 즉시 주님의 죽음과 부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깨달음의 눈이 열린 제자들은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모퉁이 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대로 시편을 통한 제자들의 깨달음을 반영한 고백입니다.

탐욕에 눈이 가려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깨닫지 못해

감사하는 마음 없이 불행하게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눈이 열려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깨달아 갈 때

저절로 착한 소작인의 삶입니다.

 

셋째,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할 때 착한 소작인입니다.

좋은 마음에서 좋은 행동도 나오지만

좋은 행동을 통해 좋은 마음에 좋은 삶의 열매도 나옵니다.

 

삶의 성패는 얼마나 항구히 주님의 뜻을 실천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고맙게도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 서간을 통해

착한 소작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대로 살면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내용이 좋아 그대로 인용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 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또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십시오.”

 

이대로 실천할 때 주님의 착한 소작인의 삶이요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소작인들입니다.

주인인 아니라 주님의 소작인인 우리들입니다.

인생 가을이 끝날 때 예외 없이 우리는 삶의 소작을 셈 바쳐야 할 것입니다.

 

현재까지 착한 소작인으로서 삶의 농사는 잘 짓고 계신지요.

죽을 때 까지 평생 계속 되는 삶의 농사입니다.

 

그러니 무지에서 벗어나 주님의 소작인으로서 내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욕심에 눈멀어 무지요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비상한 실천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인 정의와 공정, 상식과 양식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소작인의 인생 마칠 때 까지 이렇게 살 때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과 함께 우리 소작인생의 농사를 점검해보는 시간이자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헤아려 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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